말씀 묵상

야고보서 1:1~11/ 시련을 인내하는 지혜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7-01 09:07
조회
157

사람은 주변의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은 주어진 환경의 영향으로 흔들리기보다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묵상하는 야고보서는 신약의 잠언이라고도 불리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예들로 교훈해주시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야고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1절),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보내는 서신서입니다(1절).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을 떠나 다른 지역에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 Diaspora; 흩어져 있는)된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말인데, 특히 흩어져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이 확대되자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이스라엘 밖의 지역으로도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원래 살던 고향을 떠나 이방 지역에서, 더구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 당시에는 정말 쉽지 않은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대인들도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지역에 꽤 많이 흩어져 살고 있었고, 그래서 이방 지역에서도 유대인들의 회당(συναγωγή, Synagogue)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은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때문에 더 힘들고 열악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서신서의 시작과 함께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2절)고 말씀합니다. 사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한 삶의 현장을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별나게 하나님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고운 시선을 받기 어렵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핍박과 고난이 없이 이 세상에 잘 녹아져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의심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험을 당하거든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역설(逆說, paradox)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시작하는 산상수훈의 앞부분에서도 역설의 가르침으로 가득합니다. 여기서의 역설은 세상의 가치와 다른 것을 추구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고, 시험을 당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참된 그리스도인 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측면에서 기쁘게 여길 수 있다는 말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시험”은 헬라어로 “πειρασμοις”(페이라스모이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시련”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받는 고통과 어려움과 핍박 등의 시련을 만날 때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마태복음 5:10~12의 말씀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련을 당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인내의 태도입니다. 시련을 잘 견디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또 시련을 잘 인내하면 그 모든 시련에도 오히려 성숙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4절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병사들이 훈련을 받거나 운동선수가 훈련할 때 그들이 힘들고 어려운 그 훈련을 감내(堪耐)하는 이유는 그 훈련을 잘 받으면 그만큼의 진보(進步)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진보가 나타나지 않는 훈련은 그저 고통입니다. 그러나 진보와 성장, 완숙(完熟)이 나타날 수 있다면 그 시련은 충분히 견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이 있다면 충분히 견뎌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련을 견디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애쓰고 노력하고, 자신이 시련을 이겨낼 방법을 궁리하는 것만으로는 시련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그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5절).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또 하나의 태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5절 이후의 6절부터 8절은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믿음이 부족할 때가 참 많습니다. 5절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구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은 자기가 구하는 것을 주실 결과에 대해 믿습니다. 내가 이것을 구했으니 이것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여기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응답하시는 하나님, 마땅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베푸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면서 늘 “내가 구하고 있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구한대로 그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좌절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기조차 합니다. 그렇지만 온전한 기도와 간구는 “내가 구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들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베푸실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구한 기도에 어떤 형태로 응답하시든 우리는 그것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더 선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

9절부터 11절은 이러한 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9절과 10절은 “9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고 말씀합니다. 9절에서 말하는 낮은 형제는 10절의 부한 자와 대조되는 표현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낮은 형제, 즉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제는 자신의 상태에 비관하고 낙담하여 있기보다는 높음을 자랑하라고 말씀합니다. 현실은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여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생각하고 스스로 자부심과 자존감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반면에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말씀합니다. 경제적, 환경적으로 부요함을 누리는 성도는 오히려 가난한 심령을 갖고 겸허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1절에는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서 외형적으로 누리는 것은 모두 사라질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 땅에서의 시련과 고통, 어려움에 대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고, 이 땅에서 누리는 부요함과 풍족함으로 인해 교만하거나 거만해서도 안 되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이 땅에서 잠깐 누리는 것이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경험하며 누리는 것으로 말미암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게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지금은 흩어져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맞지 않는 상황을 살아가면서 버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상황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인내로 잘 견디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나가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을 부인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오늘 하루도 삶의 현장에서 넉넉히 이기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