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잠언 27:14~27/ 완벽한 사람을 찾지 마세요. 그런 사람 없어요.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6-22 08:58
조회
154

언제나 자기 기분에 따라 마구 행동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기분이 좋으면 조신(操身)해야 할 때도 큰 소리로 즐거움을 드러내고, 자기의 기분이 언짢으면 모두가 즐거워해야 할 자리에서도 온갖 짜증을 다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14절은 그와 같은 자를 빗댄 말씀입니다. 조용해야 할 아침 시간에 아침 인사 한답시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하더라도 오히려 편안히 쉬는 자의 안식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필요하면 다들 잠든 밤에도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고, 다른 사람이 그 시간에 시끄럽게 하면 짜증을 냅니다. 내로남불의 모습입니다. 늘 자기 이야기만 하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흘려들으면서 틈만 나면 자기 이야기를 꺼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주야장천(晝夜長川)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이야기를 할 때에는 상황과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지혜입니다.

15절은 다투는 여자에 대해 비 오는 날에 지붕에서 계속 새는 물방울에 비유합니다. 16절에는 그런 사람을 제어하는 것이 바람을 제어하는 것과 같고 손으로 기름을 움켜잡으려는 것과도 같다고 말씀합니다. 도무지 제어가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14절이나 15절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기분과 자신의 생각에만 매여있으니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도 살피고, 주변의 상황도 고려하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살아가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을 겪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7절은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칼을 벼릴 때 같은 쇠끼리 서로 갈아서 날카롭게 하듯이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사람이 성숙해져 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러저러한 모든 인간관계 안에서 나 자신을 잘 다듬어가는 애씀이 필요합니다. 언짢아하고, 화를 내고, 때로는 기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나를 인격적으로 다듬어가는 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그 모든 상황은 나를 성숙하게 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나의 태도도 참 중요합니다. 18절은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잘 가꾸어야 그 과실을 먹고, 주인을 잘 섬겨야 그 주인으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 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마음입니다. 19절은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물에 내 모습이 그대로 비치고, 거울에 내 모습이 그대로 비치듯이 사람의 마음도 결국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6:45에서도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시 다른 모습으로 포장할 수 있고, 가면을 쓸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그 마음에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기에 내 마음을 온전히 잘 다듬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내 마음을 잘 다듬어놓아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서로를 세우는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늘 불평과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구나 내 맘에 100% 꼭 맞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연약한 존재이기에 누구나 단점과 약점이 있습니다. 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의 목사님이나 성도들도 그렇습니다. 다른 이에게 완벽한 만족을 찾으려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20절은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스올(Sheol, שְׁאוֹל‎)과 아바돈(Abadon, אבדון)은 지옥과 사탄의 지배 하에 있는 세계를 의미합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세계의 특징 중 하나는 만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눈도 만족함을 모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21절은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칭찬을 통해 사람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칭찬할 때 그들이 오히려 다듬어지고 세워져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은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듯이, 칭찬은 사람됨을 달아 볼 수 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독일어 성경(Luther 2017)은 “Ein Mann bewährt sich in seinem Ruf wie das Silber im Tiegel und das Gold im Ofen.”이라고 번역했고, 영어성경(NASB)은 “The crucible is for silver and the furnace for gold, And a man [is tested] by the praise accorded him.”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그 사람을 칭찬해보면 그 사람 됨을 알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칭찬을 들으면 교만해지는 자도 있고, 칭찬을 통해 오히려 더 성숙해지는 자들도 있습니다. 칭찬이든, 따끔한 충고든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도구로 삼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어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22절은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미련한 자는 아무리 단련하고, 아무리 필요한 충고를 해도 변화되지 않고, 칭찬을 받으면 오히려 더 교만해집니다. 나는 여러 관계들을 통해 성숙해 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여전히 미련한 자로 남는 자인가를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23절의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는 말씀은 특히 목회자들에게 목양하는 성도들을 잘 돌보라는 권고의 말씀으로 인용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우선적으로 이 말씀은 27절까지 이어지는 말씀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축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목양하는 양들과 소들을 잘 돌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실하게 잘 돌보면 이로 인해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24절은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고 말씀합니다. 양 떼와 소 떼를 부지런히 살펴서 좋은 결실을 맺어서 재물이 풍부해져도 그 재물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5절은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산에서 꼴을 거둘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풀을 베면 다시 그곳에서 새 풀이 돋아납니다. 풀을 베어서 꼴을 만들면 다시 새 풀이 돋아나 새로운 꼴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이 꼴들은 양 떼와 소 떼에 먹일 수 있는 양식이 될 것입니다.

내게 있는 재물이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이 재물을 필요한 곳에 흘려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흘려보내면 하나님께서 다시 채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끼다가 똥 된다”라는 말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아까워서 사용하지 않고 두었다가 오히려 사용도 한번 못하고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것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려고 하지 말고 필요한 일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채우실 것입니다.

26절과 27절은 부지런히 양 떼와 소 떼를 살피면서 돌보면 나타나는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그 결과는 풍성함입니다. 내가 부지런히 애써서 풍성한 결실을 맺더라도 영원히 남지 않고 없어질 재물을 움켜쥐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해 잘 나누면 공동체가 더 풍요로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 오늘도 내 중심적으로 살아가면서 내 만족을 위해서만 살아가지 않고 주변과 상황을 잘 돌아보면서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고, 또 내게 주어진 것들을 잘 나누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