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사무엘하 19:40~20:13/ 다윗의 복귀, 헤게모니(Hegemony)를 위한 물밑 전쟁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2-10-22 09:56
조회
45

갈등은 서로 갈리게 합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편 가르기인 것 같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 등에 따라 서로 편을 가르고,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 매우 심각합니다. 정치적으로도 좌와 우로 나뉘어서 서로 심각한 갈등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과 편 가르기는 교회와 기독교 안에서도 보이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갈등과 편 가르기는 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매우 무서운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잠재우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환궁(還宮)하는 과정에서 유다 족속과 이스라엘의 다른 족속들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유다 지파에게 종친(宗親)임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을 부탁했었습니다(19:11~13). 그래서 유다 지파는 다윗의 환궁을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다른 지파들과는 상의하지 않고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환궁에 대해 왜 같이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진행했느냐며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이 항의합니다(19:41). 압살롬의 반역에 동조했던 상황에서 다윗 왕의 환궁은 어떤 불이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다윗의 환궁 절차에 자기들이 소외된 것을 항의한 것입니다. 그러자 유다 지파는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19:42)고 답합니다. 그렇지만 자기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뭔가를 얻은 것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진행했다고 답변합니다. 정치적 우위(優位)에 서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유다 지파와 다른 지파들 사이에 나타난 이러한 갈등은 매우 정치적 계산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유다 사람들에게 왕은 공평하게 모든 백성을 돌보는 자이며, 모든 백성의 몫이라며 함께 상의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19:43). 그러나 유다 사람들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보다 더욱 강경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서로 타협의 여지가 없는 팽팽한 대결 구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헤게모니(Hegemony)를 잡기 위한 치열한 갈등이었습니다.

정말 한 나라가 하나가 되어 더욱 견고해지려면 서로간의 갈등이 없어야 합니다. 혹시 갈등이 생기더라도 서로 배려하며 빨리 풀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들의 이득을 위해 첨예한 갈등으로 맞서면 그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도 결국 이러한 갈등이 봉합(縫合)되지 못해서 나중엔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지게 됩니다. 정말 다윗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주신 왕이라고 인정한다면, 서로 다투기보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서로 받아주며, 한 마음을 만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반역으로 시작된 갈등은 이스라엘의 속에서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갈등과 반목(反目)이 계속되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불순한 세력들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20장 1절에는 이러한 혼란을 틈타 그 갈등을 더 첨예하게 만드는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베냐민 지파에 속한 세바라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 사람에 대해 “불량배”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건달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불량배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별로 가치가 없는 사람, 별로 이득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폐만 끼치는 사람입니다. 불량배 세바가 등장하여 갈등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 갈등을 오히려 더 심화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 주셔서 화목하게 하셨지만, 사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간(離間)질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나는 어떠한 자인가요? 갈등을 해소하는 화해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세바의 선동에 사람들은 세바의 편에 서서 다윗을 대적하는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력이 약해진 것입니다. 자기가 취할 욕심에 집중하면, 분별력과 판단력을 잃어버립니다. 불량배에게 민심이 쏠리는 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입니다.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다윗은 압살롬의 군 지휘관이었던 아마사에게 권한을 주어 유다 사람들을 삼 일 내로 모으게 하였지만, 지체가 되자 다윗은 아비새에게 세바의 세력을 뒤쫓게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요압과 아마사가 서로 마주치게 되는데, 요압은 자기를 맞으러 나온 아마사를 인사하는 척하다가 칼로 찔러 죽임. 이스라엘의 군 지휘관으로 임명된 아마사를 못마땅하게 여긴 탓입니다. 아마사는 압살롬과 함께 반란군을 지휘했던 자인데, 다윗에 의해 군 지휘관으로 임명된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압과 아마사는 이종사촌(姨從四寸)이었지만, 요압은 아마사가 반란군에 가담했었으면서도 자기보다 높은 군 지휘관이 된 것을 불편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물밑에서는 치열한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었고, 이권(利權) 다툼의 양상이 더욱 깊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장 3절에서는 압살롬과 관계한 후궁들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어 지내게 하였다는 기록을 짧게 남기고 있습니다. 원래는 이런 경우 왕이 다시 돌아왔을 때, 반역자와 동침한 후궁들은 죽이는 것이 그 당시의 일반적 관례였지만, 다윗은 그들을 죽이지 않고, 별실에 가두고 그곳에서 평생 살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다윗은 자기가 그 이전에 지은 죄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조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환궁하였지만 나라 안에 여러 갈등의 씨앗이 싹트게 만들었습니다. 다윗도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고, 나라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그렇게 했겠지만, 이 와중에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권(利權)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지은 죄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저지른 죄악 이후에 이전보다는 상당히 약화된 신앙의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죄는 우리의 영적 권세를 약화시킵니다. 그래서 단단한 신앙의 기초를 자꾸 연약하게 만들고,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다윗이 죄를 지은 후에 겪었던 여러 사건들 속에서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치적 판단은 있었고, 정략(政略)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더욱 온전히 바라보는 믿음은 연약해진 모습이 눈에 띕니다.

우리가 실수할 수 있고, 죄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후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욱 붙잡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탄은 자꾸 우리가 지었던 죄를 상기시키며 우리의 영적 능력을 약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럴 때 우린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몸부림을 가져야 합니다. 오, 주님! 연약한 우리를 살펴주시고, 더욱 주님만 바라보면서 주님의 뜻을 헤아려 따르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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