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잠언 26:1~16/ 미련한 자로, 게으른 자로 살아가지 말고 Just Do It!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6-19 09:28
조회
129

우이독경(牛耳讀經), 소 귀에 경(經) 읽기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이야기를 해주어도 미련한 자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는 이런 미련한 자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들에게는 영예(榮譽)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1절). 예전에 완장 문화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완장(腕章)이란 팔에 두르는 표장(標章)을 말하는데, 축구의 주장이 팔에 두른 것과 같은 것이지요. 예전에는 주로 어떤 일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완장을 차게 하여 표시를 했는데, 무식한 사람에게 완장을 채워주면 완장을 찼다는 자만심에 더 권력을 휘두르는 결과를 일컬어 완장 문화라고 말합니다. 대통령감이 아닌데, 장관감이 아닌데 그러한 자리에 올라가면 나라가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목사감이 아닌데, 장로감이 아닌데, 권사나 집사감이 아닌데 그러한 자리에 올라도 교회공동체가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1절부터 12절까지는 이러한 미련한 자를 경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에게 감당하지 못할 역할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6절, 10절). 10절은 “장인(匠人)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는데, 표준새번역은 이 구절을 “미련한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궁수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쏘아대는 것과 같다”고 번역했습니다. 미련한 자에게 일을 맡기면 여러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사람을 잘 배치하는 것이 한 조직을 건강하게 세워감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교회들이 건강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일꾼을 잘못 세웠기 때문입니다. 목사를 잘못 세우고, 장로, 권사, 집사를 잘못 세워서 나타나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사회적 지위가 있고, 물질적으로 부유하다고 해서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서는 안 되는데, 영적이고 성경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여러 이유들을 근거로 일꾼을 세우니 교회공동체가 세속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아무나 함부로 일꾼을 임명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미련한 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미련한 자들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가르침을 받아도 엉뚱하게 적용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4절과 5절에서는 미련한 자에게는 지혜를 말해줄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미련한 자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일깨움입니다. 3절 말씀처럼 막대기로 등을 쳐서라도 미련함에서 나오도록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시면서 종종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 4:9)고 말씀합니다. 귀가 있다고 다 듣고 깨닫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7:6에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미련한 자들은 귀한 교훈을 귀한 것으로 받아들일 태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미련한 자가 때로는 잘난 척하면서 마치 지혜의 말인 것처럼 가르치려고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7절과 9절에서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술 취한 자가 손에 가시나무를 들고 휘두르는 것과도 같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온갖 지혜를 말합니다. 이렇게 살아야 성공한다, 이렇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다, 이런 태도를 가져야 앞길이 열릴 수 있다 등으로 우리에게 지혜인 양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처세술(處世術)이라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공유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세상의 지혜는 미련한 자의 입에서 나오는 잠언과 같은 것이기에 귀담아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에 집중해야 합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가 실수를 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고서도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여 행합니다(11절). 한번 잘못했다면 그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 다시는 그러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해야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들은 반복해서 동일한 실수와 잘못을 저지릅니다. 미련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권고와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시가 더 지혜롭다고 착각하기 때문(16절)에 아집(我執)에 사로잡혀 참된 지혜를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12절은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미련한 것보다 더 나쁜 것은 교만하고 거만한 것입니다. 요즘은 잘못을 하고도 뻔뻔하게 자기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미련해서 그렇습니다. 다윗은 실수하고 죄를 저질렀어도 그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돌이키는 지혜가 있는 자였습니다.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진 미련한 자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지혜에 귀기울여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미련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모습은 게으름입니다. 13절부터 16절까지는 게으름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도 자기의 게으름에 대한 핑계들이 있습니다. 16절은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자기의 게으름에 대해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돌려대며 자기의 행위에 대해 변명하면서(13절) 자기의 행위에 논리를 부여하려고 합니다. 게으른 자는 14절 말씀처럼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취직을 안 한 101가지의 이유, 과제를 안 한 101가지의 이유, 해야 할 일을 안 한 101가지의 이유를 늘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 할 일을 해야 합니다. “Just Do It!”이라는 나이키(Nike)의 광고 문구처럼 주어진 사명, 주어진 과제, 해야 할 일들이 있다면 일단 해보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하지 않는 자들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물론 해야 할 일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지에 대해 검증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검증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한 하나님의 뜻이 참 많은데, 그런 것들은 지금 당장 시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미련한 자를 붙들고 시간을 버리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지금 당장 삶으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