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잠언 25:15~28/ 적당하게 하는 지혜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6-18 08:53
조회
310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습니다.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못하다는 말입니다.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적당하다는 말은 대충 한다는 말과 다릅니다. 적당하다는 것은 가장 적합한 정도를 말하는 말입니다. 모든 일에는 균형감이 참 중요합니다.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잘못된 상태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기독교 안에서도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좌와 우로 나누어 서로 갈등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한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정말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때로는 진실이나 사실도 제대로 못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언제나 참된 분별력을 가지고 균형감을 이루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16절은 “너는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고 말씀합니다. 족하리만큼 먹으라는 말은 어느 정도 적당하게 먹으라는 말입니다. 27절도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꿀이 언급될 때엔 일반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소개되지만, 그 좋은 꿀도 너무 지나치게 먹으면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을 비롯하여 일반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입니다. 17절에서도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폐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성령의 은사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어떤 은사가 나타날 때에 자기의 은사만 강조하면서 질서 없이 행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가르치면서 40절에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을 개역한글에서는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번역했었고, 표준새번역에서는 “모든 일을 적절하게 또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모든 일은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28절은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자기의 마음, 자기의 감정, 자기의 생각 등을 잘 제어할 줄 알아야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네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마치 멋진 삶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 인간의 심성(心性)은 죄 가운데 있기에 성령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마음을 제어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우리의 마음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됩니다. 때로는 인내가 필요하고, 때로는 감정을 억누르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5절은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황에 맞는 처신(處身)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처신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에 따른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증언을 해야 한다면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자기의 이득을 위해,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거짓되게 증거해서는 안 됩니다(18절). 마음이 상한 자 앞에서는 노래하기보다는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20절). 여기서의 노래는 즐거움에 의한 노래를 말합니다. 즉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그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악한 원수라도 배고파한다면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면 물을 마시게 하라고 말씀합니다(21절). 선(善)으로 악을 갚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앞에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20, 21에서도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잠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처신은 세상의 기준과 다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44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산상수훈을 통해서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도 돌려대라시며 원수를 향해 선으로 대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못되게 굴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향한 원망과 분노와 참소(讒訴)를 서슴지 않는다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더 악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23절).

우리는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늘 다툼을 일으키는 아내와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이 낫다(24절)고 말씀하신 것도 부부 싸움을 하느니 따로 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서로 배려하면서 상대방을 용납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처신이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악인 앞에 굴복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26절은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악을 선으로 갚는다고 해서 악을 용납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되 악을 용납할 것이 아니라 선(善)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선(善)이 악(惡)을 이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물과 샘이 오염되듯이 이 사회가,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썩어가게 될 것입니다. 배려하고 용납하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19절은 “환난 날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실되지 못한 자는 자기의 상황에 따라 늘 말과 행동을 바꾸기 때문에 그러한 자를 의지하면 오히려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진실하지 못한 자와 진실한 자를 잘 분별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을 하면 그 말만 듣고 정말 진실하고 신실한 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 말한 사람만 믿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결국 진짜를 놓치고 가짜를 돕는 일이 발생하는 일을 숱하게 보아왔습니다.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하는 신실한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내게 이 말, 저 말을 하며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내게도 이러한 분별력이 잃어버려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5절은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그 당시에 주로 전쟁에서 승리의 소식을 전하는 것일 것입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승전보(勝戰報)가 들려오는 것은 말 그대로 목마른 자에게 냉수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말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소식이 되어야 합니다. 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모든 일을 적당하게 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모든 일에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처신하며 악을 선으로 갚아 선한 영향력을 보이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