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잠언 25:1~14/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라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6-17 08:19
조회
185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참견하려고 하고,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에 늘 가르치려고 하고, 자기의 생각과 방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에 대해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존중해주지도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이렇게 잘난 척하는 사람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6절은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자기가 매우 중요한 인물임을 스스로 드러내려고 애쓰는 모습은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자존감(self-esteem)이 있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자존감을 넘어서서 자만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2절은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을 숨기는 것이 하나님의 영화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역에는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일들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창조의 비밀, 하나님의 섭리, 온 우주의 삼라만상(參羅萬像)을 우리 인간이 알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숨겨진 비밀, 신비의 영역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일을 살피고 잘 돌보는 것은 왕의 영광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이 모르는 영역이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난 척, 자기가 잘 아는 척하는 것은 미련한 일입니다.

잘난 척하는 사람은 때로 허풍을 떨기도 합니다. 14절에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다고 자신을 내세워 자랑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서 할 것처럼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도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이 항상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늘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8절부터 10절의 말씀은 법정의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다툼이나 문제가 발생하면 법정에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게 되는데, 성급하게 소송하지 말고(8절), 다툴 일이 벌어져도 문제가 되는 부분만 서로 변론하고 불필요하게 상대방의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9절).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내게 해(害)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10절). 시비나 다툼이 벌어지면 성급하게 나서서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기 쉽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유리하기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끄집어내고, 사안(事案)과 관계가 없는 상대방의 비밀을 퍼뜨려서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하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어진 문제만 다루라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 할 때도 그렇고, 교회 안에서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도 그렇고, 사회생활 속에서도 그러한데 종종 문제의 영역을 넘어선 엉뚱한 것들을 거론하며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감정적인 다툼으로 치달아서 오히려 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11절은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고 말씀합니다. 해야 할 말만 하는 것, 상황에 적합한 말을 하는 것, 문제의 해결을 위한 말을 하는 것, 꼭 필요한 것을 말하는 것, 말해야 할 때에 말하는 것 등이 경우에 합당한 말입니다. 이런 말은 책망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이 말을 잘 듣는 이에게 금고리와 정금 장식과 같이 그 사람을 세워주는 말이 될 것입니다(12절).

은에서 찌꺼기를 제거하여 순은이 되었을 때 장색(匠色, the smith)의 쓸만한 그릇이 나오듯이(4절), 악한 자를 제하는 것이 왕권을 견고히 세우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5절). 잘난 척 하는 사람, 자만한 사람, 거만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5에서도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13절은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충성된 사자를 영어성경 NASB에서는 “faithful messenger”라고 번역했습니다. 독일어 성경(Luther 2017)은 “ein getreuer Bote”라고 번역했습니다. 충성된, 신실한 메신저, 전달자를 의미합니다.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명확하고 애매모호한 메시지는 답답하게 만듭니다. 상황에 따라 메시지를 바꾸는 것도 일을 오히려 꼬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확한 메시지는, 마치 더운 추수 날에 얼음냉수와 같이 시원하게 만든다고 말씀합니다. 잠언이 기록될 당시 얼음냉수는 왕족과 귀족이나 먹을 수 있는 음료였는데, 무더운 날에 속을 시원케 하는 냉수와 같은 말을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 말이 주변 사람들에게 무더운 날 시원한 얼음냉수와 같은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 고구마를 100개 정도 먹은 것처럼 답답하게 하고 일을 꼬이게 하는지 자신을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겸허하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얼음냉수와 같은 속 시원함을 주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