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사무엘하 6:1~11/ 웃사가 왜 죽어야 했을까?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2-09-27 08:21
조회
57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해법(解法)이 나옵니다. 아무리 옳고 좋은 목적이라고 해도 방법이 잘못되면 안 됩니다.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고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윗은 성막의 지성소에 있어야 할 언약궤가 70여 년이 지나도록 다른 곳에 방치되어 있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의 성막으로 가져올 계획을 세워서 실행합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을 그 마음의 중심에 두고 있는 자였기에, 사울 왕이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던 언약궤를 다기 제 자리로 안치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언약궤를 다시 성막에 두는 것은 통일 이스라엘을 신앙으로 하나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무엘이 사사로 있었던 시대에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의 전쟁터에 언약궤를 가지고 나갔다가 블레셋에게 패하며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왔지만, 성막으로 가지고 오지 못하고 오랜 세월 동안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두었었습니다. 다윗은 이 언약궤를 다시 있어야 할 자리로 가져오려고 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신앙적으로도 온전히 서길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결국 바알레유다(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언약궤를 옮겨오기 시작하는데(2절), 혹시 모를 블레셋의 도발을 방지하기 위해 삼만 명의 정병(精兵)을 동원하여 다윗도 함께 바알레유다(기럇여아림)로 갑니다(1절~2절).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원래 언약궤는 레위인 중에 고핫 자손이 언약궤의 고리에 채로 꿰어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율법에 정하고 있습니다(민 3:30, 31; 4:15). 다윗은 이러한 규정을 무시하고,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옮긴 것입니다. 물론 3절을 보면 “새 수레”에 실었다고 하였으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5절에도 여러 가지 악기들을 총동원하여 하나님 앞에서 연주하며 찬양한 것을 보면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언약궤를 옮기려고 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6절과 7절에 기록된 웃사의 죽음은 의아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언약궤를 실은 수레가 흔들려 언약궤가 땅에 떨어지려고 한다면, 아마 그 누구라도 그 귀중하고 거룩한 언약궤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았을 것입니다. 만약 웃사가 언약궤를 붙잡지 않고 내버려 두어 언약궤가 땅에 떨어지기라도 했으면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까 생각하면, 웃사의 행동을 잘못했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석연(釋然)치 않습니다. 그러니 웃사만 괜히 억울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을 생각할 때 웃사로서는 매우 억울한 부분이 있지만, 웃사의 죽음에 대해 하나님께 항변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대로 언약궤를 옮기지 않았다는 것이 이미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불상사가 발생되도록 한 것은 처음부터 언약궤를 규정된 방식으로 옮기지 않아서 벌어진 결과인 셈입니다. 예를 들어 건축 현장에서 규정을 어기고 제대로 된 규정과 과정을 어기며 건축이 진행되다가 건축물이 무너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되고, 그로 인해 그 현장에 있던 노동자가 죽게 되었다면, 그 노동자는 정말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이지만, 결국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제대로 된 규정과 과정을 어긴 책임자들의 문제인 것이지 그 현장에서 사람이 죽게 내버려 두신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단순히 웃사의 잘못만이 아니라, 언약궤를 이동하는 전체적인 과정과 방식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결정적으로 웃사에게 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자들이라면, 다윗을 비롯하여 직접 옮기는 일꾼들까지 모두가 제대로 된 원칙에 따라 행해야 할 사람들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은 이 일로 인해 언약궤 옮기는 것을 잠깐 멈추게 됩니다. 8절에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라고 기록하고 있고, 9절에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웃사가 죽게 되는 사건을 접하면서, 다윗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시 언약궤를 옮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자신이 명하여 실행되고 있었던 상황 속에서 웃사가 죽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에 대해 화도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궤 옮기는 것을 멈추고 오벧에돔의 집에 일단 안치하게 됩니다.
언약궤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웃사의 죽음이나, 그 이전에 언약궤를 두었던 블레셋 지역에 하나님의 재앙을 내린 것이 언약궤 자체로 인해 나타난 불상사가 아닙니다. 언약궤를 다루는 사람들과 방식이 늘 문제였던 것입니다. 언약궤는 레위인들에 의해 취급되어야 했고, 언약궤는 성막의 지성소에 있어야 했는데, 그러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음으로 인해 불상사가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칫 우리가 잘못된 방식으로 뭔가를 해놓고, 마치 언약궤가 우리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주는 것처럼 언약궤를 두려워하거나, 원망할 수 있습니다. 언약궤가 문제가 아니라 언약궤를 다루는 우리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궤가 잠시 안치되어 있는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심으로 언약궤가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11절).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규칙대로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내 방식대로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선한 동기로 행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식대로 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하나님의 방식대로 행해져야 합니다. 사역도, 가정과 직장과 학업의 현장에서도 이것은 늘 지켜져야 할 진리입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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