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잠언 21:15~31/ 멀리 내다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지라
멀리 보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미련한 자는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멀리 내다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악한 자(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차이는 눈앞에 있는 것만 추구하느냐, 아니면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멀리 내다 보고 있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자와 지혜로운 자는 즐거워하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15절 말씀처럼 의인(지혜로운 자)은 정의를 행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죄인(미련한 자)은 정의가 패망으로 다가옵니다.
17절, 20절, 25절, 26절 등은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악인)는 향락과 기름진 음식과 술을 즐깁니다. 집에 재물이 있어도 눈앞의 향락을 위해 탕진해버립니다. 눈앞의 향락에 대한 욕망으로 게으를 수밖에 없습니다. 종일 욕심만 부립니다. 결국 눈앞의 향락만 즐기다가 조만간에 모두 탕진하고 소비하고 맙니다. 심지어 종교적인 행위까지 자기의 욕심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 삼습니다. 그래서 27절은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고,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고, 봉사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내가 잘되기 위해 신앙생활하고,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을 받은 자입니다. 이 복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 잘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국 하나님의 때에 만복(萬福)을 누리겠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고통과 핍박과 손해를 경험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내게 찾아오는 그러한 어려움과 고통을 감내(堪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매 순간의 형통만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라면 때로 고통과 핍박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올곧게 살아가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렇기에 지혜로운 자는 무조건 움켜쥐고 아끼는 것만은 아닙니다. 멀리 내다 본다는 것이 무조건 아껴서 쌓아놓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26절에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푸느니라”고 말씀했듯이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고 배려하고 베풀 줄 아는 자입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섬겨서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자녀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독려하면서 “공부해서 남 주나?”라고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참된 그리스도인은 “공부해서 남 주는 자”여야 합니다. 돈 벌어서 남들에게 베푸는 자여야 합니다. 자기의 재능을 잘 갈고닦아서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자여야 합니다. 자기의 시간을 아껴서 남에게 베푸는 자여야 합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서 성공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리스도인들의 성공은 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성공은 쌓았다가 무너지기 쉽습니다. 학력도 좋고, 사업에 잘되거나 권력을 취하여 권세를 가졌던 이들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일을 우리는 너무 자주 주변에서 목격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이러한 성공과는 결이 다릅니다. 21절과 22절은 “21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22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이 의지하는 방벽을 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은 경쟁을 통해 다른 사람을 짓누르고 치밀한 계산을 통해 성공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공의와 인자를 통해서 성공합니다. 그래서 성을 정복하여도 단순히 그 성을 정복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성이 의지하던 방벽, 요새를 허물어 다시 무너지지 않는 완벽한 성공을 이루어갑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자는 성공하여도 무례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24절에서는 미련한 자의 모습을 언급하면서 “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 친하게 지내던 이들도 매우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거나, 큰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거나, 권력자의 자리에 가게 되면 그 태도가 많이 바뀌는 자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직책, 대형교회의 목사 등은 일들이 매우 많기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사소한 일들을 일일이 살펴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 태도는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늘 겸허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정직한 모습 그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악인은 얼굴을 굳게 합니다(29절). 공동번역 성경은 이 표현을 “악한 사람은 얼굴에 쇠가죽을 쓰고”라고 번역했습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겸허한 모습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살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그마한 죄라도 우리 안에 있으면 괴로워하며 회개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16절). 그렇기에 날마다의 삶 속에서 지혜로운 삶을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겸허해야 합니다. 입과 혀를 잘 지켜야 합니다(23절). 하나님의 지혜보다 나은 지혜는 없습니다(30절).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31절). 그렇기에 우리는 겸손한 태도로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자기가 다 이룰 것이라고 장담하지 말고, 자기가 다 이룬 것이라며 교만하지 말고, 내 계획대로 될 것이라고 자만하지 말고 겸허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한 가지, 한 가지의 일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