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잠언 18:13~24/ 잘 들어라. 말은 조심하고!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6-15 07:53
조회
200

말을 잘하는 자보다 잘 듣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잠언에서도 말하는 것과 듣는 것에 대한 지혜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잘 듣는 것과 잘 말하는 것에 대한 교훈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잘 듣는 자입니다. 상담을 공부할 때에도 상담은 잘 듣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을 많이 배우게 되는데, 13절의 어리석음을 보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13절은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미 마음 속에 대답할 내용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답정너”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답정너의 뜻은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말의 줄임말입니다.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을 잘 살피고 분별하여 대답해야 하고, 더 나아가 상대방의 감정도 공감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화를 통해서는 우리는 늘 배울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5절에서도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잘 듣는 것을 통해 지혜를 얻는 자가 정말 지혜로운 자입니다.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는 17절의 말씀은 우리가 두루 살펴서 여러 사람의 말을 다 듣고 잘 분별해야 함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자기 입장에 따라 말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한편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지 않고 여러 말을 듣고 종합하고 분석하여 잘 분별할 수 있는 자여야 합니다. 어제의 본문 말씀을 통해서도 살펴보았지만, 자기와 친분관계가 있다고 해서, 자기 편이라고 해서, 자기에게 이득이라고 해서 굽은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잘 분별하여 판단하기 위해서는 잘 듣는 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또 하나의 예는 23절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는 말씀인데, 구하는 자와 듣는 자가 서로 자기의 생각만 하고 있기에 들을 마음도 없는 것을 말합니다. 역시 자기 입장에 따라 이미 정해진 마음이 있으니 처음부터 아예 들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들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잘 들은 후에는 잘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20절과 21절은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0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혀의 힘에 달렸다고 말씀합니다. 요즘 SNS가 발달되면서 흔히 악플이라고 부르는 악성댓글로 인해 사람이 죽는 일도 자주 일어납니다. 자신은 가볍게 한 말이지만, 상대방은 그 말로 인해 심신(心身)이 말라가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신약의 잠언이라고 불리는 야고보서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경고합니다. 야고보서 3:6에서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야고보서 3:8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 속에 말로 받는 상처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혜로운 자는 혀를 조심합니다. 축복의 말, 감사의 말, 격려의 말, 응원의 말, 공감(共感)의 말을 더 많이 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그 말이 자기에게 되돌아와 그 쓴 열매를 먹게 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혹시 말로 인해, 또는 여러 이유로 인해 서로 갈등과 다툼이 생겼다면 서로 화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화해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19절의 말씀에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떤 다툼과 갈등으로 인해 서로 벽이 생겼을 때 서로 화해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어려운 걸 해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잠언 16:32에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상처를 받은 자라면 내 마음을 잘 다스려서 화해하도록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내가 상처를 준 사람이라면 겸허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상처를 주고, 누가 상처를 받았는지를 따지면 안 됩니다. 그것을 따지는 순간 화해는 어려워집니다.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려고 하는 것은 다시 싸우겠다는 선전포고와도 같습니다. 그저 화해가 최종 목적이 되어야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18절에서는 제비를 뽑는 것이 다툼을 그치게 했는데 이 말씀은 다툼의 문제를 주님께 맡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비를 뽑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는 또 다른 표현 방법입니다. 우리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기만 한다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서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물도 필요합니다. 마음이 담긴 선물은 그 길을 열어줍니다(16절). 선물은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하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뇌물은 어리석은 자가 하는 것이지만, 선물은 지혜로운 자가 할 수 있는 지혜로운 행위라고 말씀합니다. 선물을 주기도 하고, 받아보기도 하지만, 선물은 줄 때나 받을 때나 늘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24절은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많은 친구는 가리지 않고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누구와 교제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자중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별력 없이 누구나 친구로 삼고 어울려서는 안 됩니다.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된다고 말씀하면서도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4절). 즉 정말 친구가 될 사람을 가려서 사귀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가 있다면 누구일까?’라고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22절의 말씀이 눈에 보입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22절 말씀은 앞뒤 문맥을 살펴볼 때 정말 뜬금없이 등장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22절 말씀이 24절과 연관되어 있다는 논리적 전개를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인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에 인생의 가장 좋은 친구로 함께 하는 것이 정말 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주일은 아내의 생일인데, 마음을 다해 축복해야 하겠습니다. ^^

오늘 하루도 잘 들어주고, 말을 조심하면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선물 이야기도 나왔는데, 아내를 위한 생일 선물을 잘 준비해야 하겠네요. ^^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