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잠언 17:15~28/ 내 편이니 옳다고 하지 말라.
자기 편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다고 두둔하고, 자기 편이 아니라고 무조건 그르다고 비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언제나 같아야 합니다. 운동경기를 할 때 심판에 자기 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판정을 한다면 아마 그 운동경기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질 것입니다. 자기와의 관계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분명하고 공정(公正)한 잣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분명한 잘못을 했는데도 우리 교회 성도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 단체나 우리 조직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 잘못을 덮어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본문 15절은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용서하셨지만, 그 여인이 지은 죄를 그냥 덮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8:11절에 보면 예수님이 그 여인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여기서 정죄하지 않겠다는 말은 죄로 인해 받을 형벌을 가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이 여인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는 것을 전제로 앞으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분명하게 지적하시면서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18절에도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고 말씀하시는데, 분별력 없는 친절과 무조건적인 도움은 미련한 것이라고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23절이나 26절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자신과의 이해관계나 이득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것은 선하지 못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분명한 잣대로 판단하고 분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상황에 따라, 관계에 따라, 손익에 따라 말을 바꾸거나 다른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미련한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모든 것의 중심에 자기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기 문을 높이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다툽니다(19절). 적당한 선을 그어놓고 자기를 방어하고, 자기를 드러내며, 자기와 맞지 않으면 다툼도 불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 삶의 중심에 자기 자신을 두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이웃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17절은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친구는 자기 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감정이나 자기 생각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차라리 말이 없는 것이 지혜로울 때가 있습니다. 27절과 28절에는 말을 아끼는 지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때로는 차라리 말이 없는 것이 나을 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뭔가 잘되는 것처럼 보여도 늘 근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부자인데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는데도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는 자들은 즐거움과 평안을 누립니다. 21절과 22절, 25절은 미련한 자 자신과 미련한 자로 인해 근심을 겪는 자들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신도 근심을 겪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근심거리가 됩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근심거리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강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많은 질병이 스트레스와 걱정과 분노 등에서 온다고 하는데, 22절에서도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때론 이 세상에서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결국은 우리의 마음에 참된 평안과 즐거움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나님의 은혜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