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사무엘상 25:1~22/ 모욕하는 자, 발끈하는 자, 평화를 가져오는 자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2-06-16 08:26
조회
102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누군가로부터 무시당했을 때, 무시당하는 것을 넘어서 모욕당했을 때 그 모욕감을 참는 것은 어렵습니다. 더구나 내가 여러 번 은혜를 베풀었는데, 오히려 모욕감을 주었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사무엘이 죽자 바란 광야로 이동합니다(1절). 사무엘이 죽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황을 돌보던 지도자가 죽은 것이기에,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젠 본격적으로 다윗이 전면에 드러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바란 광야로 옮긴 다윗의 무리에겐 양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다윗과 함께한 무리의 숫자를 600명이라고 사무엘상 23:13에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이 사백 명과 이백 명으로 나누었다고 할 때(13절), 20세가 넘은 남자만도 최소한 600명이니 더 많은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많은 인원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마침 나발이라는 부유한 사람의 집에서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듣고 수하들을 나발에게 보내어 양식을 좀 보태달라고 요청합니다(2절~8절). 양털을 깎는 시기는 일반적으로 겨울을 지내고 봄철이 지날 때인데, 양털을 깎을 땐 큰 잔치를 벌여 사람들을 초청하여 대접하고, 나그네에게도 후하게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 더구나 양과 염소의 수가 각각 삼천 마리, 천 마리 정도나 되는 나발의 집에서 양털을 깎는다는 것은 아주 큰 잔치가 벌어질 것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의 식솔(食率)들을 위해 나발에게 양식을 좀 요청하기 위해 수하들을 보내어 아주 정중하게 부탁한 것입니다. 더구나 나발의 가축들이 갈멜에서 목양하는 동안 다윗의 군사들이 그 양 떼들을 보호해주었었기에 양털을 깎는 축제의 시기에 마땅히 다윗의 무리에게 양식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요청한 것입니다. 나발은 다윗과 같은 유다 지파에 속한 자이기에 아마도 기꺼이 다윗의 요청을 들어주었을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예측과는 달리 나발은 다윗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10절, 11절). 심지어 다윗을 모욕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10절을 보면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라고 물으며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라고 비아냥거립니다. 다윗이 누구냐고 묻는 말은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이 이새의 아들인 것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장수이며, 사울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인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11절에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라고 말하는 것도 근본도 없는, 보잘것없는 자들이라고 폄하(貶下)하기까지 했습니다. 다윗이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5절)라고 말한 것을 보면 나발은 다윗에 대해 충분히 아는 자라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그런데 나발은 다윗을 모욕한 것입니다.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란 표현을 통해 사울 왕을 배역한 자라고 은근히 비아냥거린 것입니다. 나발은 사울 왕과 빗대어 다윗을 반역자, 배신자 취급을 한 것입니다.

신기하게 나발이라는 이름의 뜻은 “시들다”, “미련하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이미 버린 사울의 편에서 다윗을 홀대(忽待)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분노합니다. 그래서 사백 명의 군사들에게 칼을 차라고 명하고 나발과 그 집의 모든 남자들을 쳐서 멸하기 위해 나발에게로 떠납니다(13절, 22절). 나발의 집을 위해 그 양 떼를 보호했던 은혜를 저버리는 나발을 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21절). 이 다윗의 진노는 섣부른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나발의 가족을 치는 것은 앞으로 왕이 될 다윗에게 오히려 나중에 시빗거리가 될 수 있는 여지가 될 것입니다. 때로는 이러한 상황에서 좀 침착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 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식솔들의 양식을 걱정하는 마음까지 엇물려 다윗은 화가 났겠지만, 곧바로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 것은 바르지 못합니다.

다행히 다윗이 나발의 집을 치는 참상을 막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나발의 하인들 중에 다윗의 요청에 나발이 거부하는 것을 들었던 하인이 그 모든 상황을 보고 재빨리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에게 알려주었습니다(14절). 그리고 다윗이 갈멜에 있을 때 나발의 집 사람들을 잘 돌봐주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다윗은 좋은 사람임을 강조합니다(15절, 16절). 이 신하의 말을 들은 아비가일은 신속하게 다윗의 무리에게 줄 양식을 준비합니다(18절). 다윗의 무리가 먹기에 충분한 양의 양식을 준비했습니다(참조: 볶은 곡식 다섯 세아라고 했는데, 한 세아가 7.33ℓ 정도 되니 다섯 세아는 36.65ℓ 정도의 양). 그리고 자기 남편 나발에게는 알리지 않고 다윗에게로 출발합니다(19절). 그래서 이미 나발의 집을 멸절하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출발한 다윗의 무리와 맞닥뜨립니다(20절). 아비가일이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의 근원”, “즐거움의 아버지”라는 의미로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기쁨으로 바꾸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행동으로 인해 일촉즉발의 위기를 평화(샬롬)의 분위기로 바꾸어 놓게 됩니다.

모욕감과 무시당함으로 화가 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곧바로 대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벌어질 때 나발의 신하 중 한 사람처럼, 그리고 지혜로운 아비가일처럼 일촉즉발의 위기를 평화(샬롬)의 분위기로 바꾸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자인가, 아니면 갈등과 다툼을 빚어내는 자인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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