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사무엘상 19:1~24/ 죽이려는 자, 살리려는 자들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면 진실을 바라보기 힘들어집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력도 흐려집니다. 만약 내 안에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판단하는 것을 보류해야 합니다. 분별력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이 승승장구(乘勝長驅)하는 것이 매우 못마땅했습니다. 사울이 이렇게 다윗을 못마땅해하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딱 한 가지의 이유였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왕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셨고, 새로운 왕을 세우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기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다윗의 인기는 사울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야욕(野慾)을 향할 때 그 인생의 말로(末路)는 비참해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욕심만 내려놓으면 될 것을, 원래 자기가 원해서 왕의 자리에 간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 왕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심신(心身)이 피곤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지금 당장 왕위를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가득한 욕심에 따라 시기와 질투에 불타 오히려 자기의 영혼과 마음을 스스로 힘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자기의 사위가 된 다윗이었고, 전쟁에 계속 승리하여 백성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고, 자기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사울의 마음만 잘 정하면 모든 것은 순조롭게, 평화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욕심에 매여 일을 그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었지만, 이젠 노골적으로 다윗을 죽이라고 아들 요나단과 신하들에게 명령합니다(1절). 그렇지만 사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윗을 좋아했습니다. 요나단도 다윗을 심히 좋아했습니다(1절).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에게 은밀한 곳에 숨어있으라고 말하고(2절), 아버지인 사울 왕에게 다윗을 죽이면 안 된다고 설득합니다(4절, 5절). 이 요나단의 말에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6절). 물론 이 맹세는 일시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전쟁에 나가 승전하여 다시 공(功)을 세우자(8절) 사울 왕은 다시 시기와 질투에 휩싸이게 됩니다. 결국 사울은 자기 옆에서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하게 되는 일을 벌입니다(9절, 10절). 그리고 사울은 다시 전령들을 명하여 다윗을 죽이게 합니다(11절). 이번엔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을 피신시키고(11절, 12절) 침대에 다윗 대신 우상을 눕혀놓고 사람처럼 꾸며놓습니다(13절). 아마 우상이라고 표현된 것은 드라빔(Teraphim)일 것입니다. 가정의 수호신처럼 여기는 우상인데, 크기는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였습니다. 미갈이 이 우상을 집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사울 왕과 그 딸 미갈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결국 사울 왕은 다윗처럼 위장한 우상만 접하게 되고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가 실패되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상황을 피하여 도망하였는데, 다윗이 향한 곳은 사무엘의 집이었습니다(18절). 멀리 도망갈 수도 있었겠지만, 다윗은 사무엘을 택했습니다. 사무엘은 그 당시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다윗이 사무엘에게 간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려는 마음이 드러난 행동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간 다윗을 찾아 죽이려고 전령들을 보냈지만, 보내는 전령들마다 사무엘의 집에 가까이 오면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을 하게 되는 현상을 겪게 됩니다(20절, 21절). 아마 전령들에게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영적 체험을 하듯이 예언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거듭하여 전령을 보냈지만 세 번씩이나 그런 일이 반복되자(21절) 사울이 직접 나섰는데, 사울마저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예언을 하는 현상을 체험하게 됩니다(23절). 심지어 옷을 벗은 채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는 현상을 보여줍니다(24절). 옷을 벗었다는 것은 아마 겉옷을 벗고 안에 있는 속옷만 입은 상태였음을 보여주는 표현 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라는 다소 비아냥거리는 것 같은 속담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24절). 이 정도가 되면 ‘아,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은 다윗에게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면 되었을 것을 사울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해 정말 피곤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모두 다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욕심에 매여있으니 사울처럼 죽이려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받아들이면 요나단처럼 살리는 자가 됩니다. 이 둘의 차이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못하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자기 욕심에 매여있는냐, 자기 욕심을 버렸느냐에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내 욕심에 매여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자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자들은 공동체를 살리고, 사람들을 세우는 자가 되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자가 됩니다. 순간순간 치솟아 오르는 내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헤아려 하나님의 뜻에 따르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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