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사무엘상 18:17~30/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와 동역하라.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2-06-07 11:04
조회
140

하나님께서 누군가와 함께하심을 알았을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 대부분 ‘당연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를 지원하고, 그와 함께 동역해야지요’라고 대답하겠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오히려 시기와 질투심에 불타서 음해(陰害)하거나 상대방을 깎아내리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의 엄청난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고, 블레셋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그런 다윗을 향한 사울 왕의 반응은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17절을 보면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면 자기의 맏딸 메랍을 아내로 주겠다고 하지만, 이것은 다윗을 높이 평가하여 보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그에게 대게 하리라”(17절)는 사울의 속셈이 있었습니다. 시기심은 살인을 불러올 정도로 무서운 태도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겸손하게 여겨 사울 왕의 제안을 사양하였는데(18절), 사울은 다윗에게 아내로 주겠다던 딸 메랍을 다른 사람(아드리엘)에게 시집을 보냅니다(19절). 사실 골리앗을 죽인 자에게는 자기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공언했던(16:25) 사울 왕이었기에 다윗에게 자기 딸을 아내로 주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슬그머니 그 약속을 어긴 것입니다.

그러던 중 사울의 또 다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들은 사울 왕은 블레셋 사람의 포피(包皮) 백 개를 가져오면 딸 미갈을 아내로 주겠다고 다시 공언합니다(25절).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삼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일부러 흘려보내지만, 다윗은 스스로를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겸손한 태도로 사양합니다(23절). 사실 사울 왕이 골리앗을 죽인 사람에게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공언하였었기에 당당하게 딸을 자기의 아내로 달라고 해도 마땅한 상황이었지만, 다윗은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을 죽인 것이 사울 왕의 사위가 되려고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사위로 삼겠다는 말은 미끼에 불과합니다. 21절은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울은 다윗을 죽게 하려는 의도로 딸을 도구처럼 사용하였을 뿐입니다. 야망(野望)에 빠져있는 자들은 모든 상황과 주변 사람들을 도구로 이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마치 옳은 일을 위해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 탁월하기도 합니다.

다윗은 미갈을 아내로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려면 사울이 요청한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100개를 가져가면 될 것이라는 마음에 블레셋 사람 200명을 죽이고 포피 200개를 가지고 사울 왕에게 가지고 갑니다. 최선을 다해 원래 제시된 목표의 두 배로 가져간 것입니다. 다윗 나름대로 미갈을 아내로 얻기 위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인정받겠다는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다윗에게는 다윗에겐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습니다. 30절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싸우러 나오면 그들이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사울 왕이 다윗을 치열한 전쟁터로 몰아넣을수록 전쟁에 승리한 다윗은 사람들에게 더욱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만 빼고 사람들이 모두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도 그러한 다윗을 보고 더욱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28절).

그런데 그러한 다윗을 보면서 사울 왕은 다윗을 더욱 미워하였고, 자기의 원수로 삼았습니다. 29절은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고 기록합니다. 사실 전쟁에서 계속 승리를 가져온 다윗은 왕에게 있어서 매우 자랑스러운 장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과의 비교의식 때문에 사울은 다윗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원수로 여겼습니다. 얼마나 다윗을 싫어했으면 “더욱더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본다면 다윗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계속 더해졌다는 표현입니다.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새로운 왕을 세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기에 다윗에 대한 경계는 더해만 갔을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울이 욕심을 버리고 다윗을 사위로 삼고, 나중에 때가 되어 왕위를 다윗에게 물려주었다면 사울도 좋고, 다윗도 좋았을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데 민감했다면 다윗이 자기 뒤를 이을 왕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다윗을 사위로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왕위를 물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심지어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도 다윗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 하나님의 뜻을 시기와 질투로 삼아 다윗을 대적으로 삼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면 오히려 편안한 삶이었을 것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빠져있다 보니 결국은 스스로 고통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28절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는 것을 보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울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자라면 다윗을 선대(善待)했어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역사하신다면 그 사람 편에 서야 합니다. 함께 동역해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내 욕심, 내 야망에 빠져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로 스스로 자멸(自滅)의 길로 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같은 그리스도인들끼리도, 같은 사역자들끼지도 종종 자신의 욕심과 야망 때문에 한마음으로 협력하기보다는 서로 물고 뜯으며 오히려 주님의 사역에 방해물이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혹시 그러한 자가 아닌가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 안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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