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사무엘상 14:36~52/ 하나님의 뜻으로 교묘히 포장된 내 야욕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2-05-30 11:39
조회
74

때로는 두 세력이 대립을 함에 있어서 양쪽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는 경우를 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서로 대립되는 의견인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주장한다면 도대체 어느 편이 진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일까요? 교회 안에서도 종종 이런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같은 일에 있어서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될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정직하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알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내 욕심과 탐욕이 그 마음에 가득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리 거론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 자기의 욕심을 버린 채 온전히 하나님의 뜻만을 간절히 바라는 자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자일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 쉽게 판단하게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면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울 왕는 블레셋을 완벽히 진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간에 블레셋을 쳐서 진멸하자고 하자 병사들도 왕의 원하는 대로 하자고 맞장구를 칩니다. 사울 왕은 이 중대한 일을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백성에게 선포하고 시행하려고 합니다. 다행히 제사장이 나서서 먼저 하나님께 묻자고 제안하여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36절).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37절).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다시 하나님께 무슨 일 때문인지를 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침묵이 누군가의 죄 때문이라고 판단하였고, 제비를 뽑아 누가 죄를 지었는지 가려내게 되는데, 결국 최종적으로 요나단이 뽑혔습니다(38절~42절). 그리고 요나단은 사울이 금식을 명한 것을 알지 못하였기에 꿀을 찍어 먹었던 것을 자백합니다(43절). 요나단은 비겁한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인 사울 왕의 권위를 세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마땅히 죽을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은 요나단을 두둔하고 나섭니다(45절). 백성의 항변은 매우 강력했습니다. 45절은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성은 요나단이 하나님과 동역했다고 고백합니다. 함께 전쟁을 수행했던 요나단의 모습을 백성은 생생하게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고, 요나단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였던 것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45절에서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했다는 표현은 속량(贖良)했다는 히브리어인 “파다”(פָּדָה)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와이프뚜”(ויפדו)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을 볼 때 요나단의 죗값을 대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드려서 요나단을 구원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백성은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요나단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사울 왕은 경솔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들에게 금식을 명한 것이나, 블레셋을 쳐서 진멸하고자 하는 열의를 가진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이 훨씬 더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으로서의 자기 권위를 높이고자 했고, 자기의 치적(治績)을 높이려는 동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15장에 가면 사울 왕은 아말렉을 쳐서 멸한 후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치적비)를 세우는 내용이 기록되고 있는 것을 볼 때도(삼상 15:12) 사울의 이러한 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하나님을 빙자(憑藉)하여 수행하려는 것 뿐이었습니다. 사울에게 하나님은 자기의 왕권을 세워가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47절부터 51절까지 사울의 업적과 사울의 가족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업적을 세웠지만 이것은 자신을 높이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52절은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전쟁을 하려는 왕이 힘센 사람, 용감한 사람, 무술(武術)이 뛰어난 자를 등용(登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하나님보다 실력 있는 뛰어난 자들을 등용하여 뭔가를 성취하려는 사울 왕의 야욕(野慾)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신앙이 내 성공을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목적이어야 합니다. 신앙을 위해 내 삶을 드려야 하고, 신앙을 위해 내 욕심을 버려야 하는 것이지, 내 욕심을 성취하기 위해 신앙을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기 욕심을 이뤄가려고 하는 추악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 목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미혹에 자주 당면할 수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내 욕심, 내 야망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어진 사역을 감당할 때 내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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