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사무엘상 4:1~11/ 껍데기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다.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2-05-14 07:02
조회
95
하나님이 멸시되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하여도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이미 살펴보았지만, 사무엘상 2:30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는 말씀으로 시작되지만, 곧바로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는 시기의 배경을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즉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서로 맞붙어 싸울 때였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접전(接戰)에서 이스라엘이 패하여 사천 명 정도의 이스라엘 군사들이 죽임을 당합니다(2절). 이런 패배를 경험하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3절)라고 한탄합니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물었어야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들의 계획대로 전쟁을 벌이고는 패배에 대한 원망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맘대로 먼저 행동한 후에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기면 하나님께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먼저 하나님께 묻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께서 행하라고 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제발 먼저 하나님께 묻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3절, 4절). 언약궤는 지성소 안에 두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아마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말리는 아버지를 제치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가지고 나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언약궤가 빼앗긴 것과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이 함께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볼 때(11절)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으로서 언약궤를 책임지고 전쟁터에 가져왔을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껍데기 제사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 율법에 명한 것도 소홀히 여겨 자기 생각대로 언약궤를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직분은 제사장이지만, 전혀 제사장답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아주 슬픈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오자 이스라엘 백성은 큰 소리로 환호합니다(5절). 이들은 언약궤를 마치 부적(符籍)처럼 여긴 것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법궤였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상징이었지만 언약궤가 곧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언약궤는 한낱 나무상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언약궤를 가져오면 언약궤에서 능력이 나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종교적 의식이, 종교적인 상징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의식(儀式)이나 상징을 하나님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의식이나 상징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올리게 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약궤로 블레셋과 싸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언약궤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겨야 합니다. 물론 성경을 읽다 보면 언약궤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하셨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없이 언약궤를 의지하는 것은 일종의 미신(迷信)일 뿐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사탄의 세력과 싸우려고 할 때 종교적인 의식이나 상징, 관습을 가지고 나간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승리합니다. 하나님 없는 종교적인 허울은 아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새벽기도회를 나가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의 기도가 없는, 단지 새벽기도회에 열심히 나가서 기도라는 행위를 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하나님과 나누는 기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진영에 언약궤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도 무척 두려워했지만(6절~8절),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싸우자고 다짐하고 전쟁을 벌여 이스라엘 군사들이 삼만 명이나 죽었고, 언약궤까지 블레셋 군사들이 빼앗아 갔습니다(10절, 11절). 그리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합니다(11절). 하나님께서 경고하셨던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아주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였습니다. 하나님 없이 종교적인 관습과 관행만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맛볼 수 없습니다. 껍데기만, 종교적인 틀만 남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그럴듯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전혀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하신 디모데후서 3:5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껍데기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의 모임에 나오고,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지 않고,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의 욕심과 생각에 따라 행하는 자들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리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사탄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날마다 깊이 경험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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