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룻기 1:15~22/ 믿음의 선택이 믿음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2-05-02 06:48
조회
336
룻기의 주연은 여자들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이름(엘리멜렉)이 등장하지만 잠깐 스치듯 지나갈 뿐입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도 잠깐 이름이 등장할 뿐입니다. 그러나 며느리인 룻은 이 성경 이름을 룻기라고 지을 정도로 가장 중심되는 인물입니다.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룻과 혼인을 하게 되는 보아스도 조연일 뿐입니다. 어쩌면 또 한 명의 중심 인물이 될 수도 있었던 며느리 오르바는 결국 친정집으로 돌아가 그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룻도 중심인물이 될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나오미가 룻에게도 강권하여 오르바처럼 친정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친정집으로 돌아갔다면 룻기도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고, 나오미도 별다른 이야기를 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제 묵상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오미는 인간적으로 볼 때 꽤 멋진 시어머니입니다. 15절을 보면 오르바가 친정집으로 돌아간 것처럼 룻에게도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강권합니다. 이렇게 며느리를 배려하는 시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나오미가 하는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고 합니다(15절).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라는 말은 이방 민족과 우상들에게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며느리에게 할 말은 아닙니다. 물론 선민사상(選民思想)에 깊이 각인(刻印)되었기에 히브리인이 아닐 경우에는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만을 섬기길 원하시는 분이시기에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오미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룻은 이렇게 말합니다. “16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16절, 17절) 이 고백은 엄청난 고백입니다. 자기는 더 이상 모압 족속이 아니라 히브리 민족이 될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도 하나님으로 온전히 섬기겠다는 매우 신앙적인 고백입니다. 이러한 룻의 결단과 고백이 룻기를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룻의 결단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으로 기억되는 다윗의 가계(家系)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굳은 결심이었는지 나오미도 더 이상 룻에게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18절).
믿음은 불편함을 감수하게 합니다. 모압 여인인 룻이 이스라엘에 와서 살게 되면 여러 면에서 불편한 일이 많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남편도 없이 과부로서 낯선 나라에 와서 사는 것이 녹록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근동 지역이라도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과 우상을 섬기는 모압은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도 많았습니다. 어쩌면 외톨이처럼 살아갈 수도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나오미가 믿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십 년이 훨씬 지나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를 베들레헴 사람들은 떠들석하게 맞이합니다(19절). “와, 나오미가 돌아왔구나”라며 반깁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말합니다(20절). 나오미는 “즐거움”, “기쁨”, “아름다움”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모압 땅에 가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빈약한 모습으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압 땅으로 가서 안정을 찾고자 했지만, 오히려 더 빈약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라라고 부르라고 말합니다. 마라는 “슬픔”, “씀”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20절)이기에 기쁨이 아니라 쓰디쓴 슬픈 여자라는 의미입니다. 풍족함을 누리기 위해 모압 땅으로 갔었는데 오히려 빈 몸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21절). 인간적인 생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쓰디쓴 결과를 맛보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22절은 나오미의 이런 고백에 반전(反轉)이 있음을 시사(示唆)해주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흉년을 맞이하여 모압 땅으로 갔었던 나오미가 보리 추수로 풍족함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베들레헴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며느리 룻의 굳은 결심으로 룻과 함께 돌아오게 된 나오미에게 찾아오게 될 축복을 예고하는 섬네일(thumbnail)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결단을 한 룻으로 인해 나타날 결과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선택을 하면 믿음의 결과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면 쓰라린 경험만 하게 될 것입니다. 룻은 친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룻의 이름처럼 나오미에게 있어서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신앙적 결단을 한 룻에 의해 나오미가 복을 누리고, 이스라엘에는 다윗을 족보를 세우게 되는 복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믿음의 선택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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