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요한복음 18:28~38/ 명확한 판결도 없이 처형당하시게 되신 예수님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2-04-13 05:05
조회
91
누구도 직접적인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는데도 사형수가 되어 죽게 되는 이상한 이야기는 바로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안나스 전(前) 대제사장도,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도 확실한 판결을 내리지 못합니다. 사실 대제사장과 산헤드린공회가 예수님께 신성모독죄를 적용하여 판결하면 돌로 쳐서 죽일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로마에서 유대의 총독으로 파견되어 와 있는 빌라도에게 재판권을 넘깁니다. 그런데 빌라도 역시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38절). 요한복음의 기록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핑계로 갈릴리를 관할하는 헤롯 왕에게로 보냈다가 헤롯도 예수님에게서 특별한 죄를 찾지 못해 다시 빌라도에게로 보내는 해프닝(happening)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민란을 일으키려고 하고, 스스로 왕이라고 한다며 빌라도의 법정에 고소했지만 자기들이 직접 판결을 내리지 않았고, 그 당시 재판의 권한을 가진 빌라도 총독이나 헤롯 왕도 죄를 찾기 어렵다고 함에도 예수님은 사형수가 되는 매우 아이러니(irony)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는 예수님을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 갔는데 이에 대해 2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들을 더럽힘을 받지 않으려고 빌라도의 관정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관례상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부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 파견된 이방인 빌라도의 관정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방인의 집에 들어갔을 경우 규례에 따라 만 하루가 지난 후 옷을 빨아 입어야 정결해질 수 있기에 반나절도 채 남지 않은 유월절을 지키려면 빌라도의 관정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웃기는 짬뽕입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는 최악의 죄를 저지르면서 관습과 형식만 따르는 비열하고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 역겨운 모습입니다. 그들은 종교지도자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속에는 온갖 추악함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권력과 명예와 부(富)를 향한 탐욕이 가득한 자들이면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겠다며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모습은 그들의 신앙은 껍데기만 남은 허울 좋은 박제(剝製)된 종교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식과 규칙을 따지면서 정작 중요한 본질은 상실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빌라도가 무슨 일로 예수님을 고발하느냐고 물었을 때(29절), 그들은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30절)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을 행악자로 몰아갑니다. 예수님은 범죄자라는 말입니다. 안나스 앞에서도 내가 잘못 가르친 것이 무엇이냐며 묻는 예수님의 반문에 제대로 답도 못했던 이들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가 무서워서 야밤에 변칙적으로 예수님을 처벌하려고 꼼수를 부리는 그들의 입에서 예수님을 행악자로 몰아가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이 문제가 종교적인 문제라는 것을 이미 간파했습니다. 아마 그 이전부터 예수님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31절에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며 예수님에 대한 재판을 거부하지만,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라고 대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미 사형당해야 할 범죄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헤드린에서 판단하여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도행전 7:54~60을 보면 스데반도 돌로 쳐 죽인 것을 기록하고 있고, 요한복음 8장에서도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던 사건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께 대해 그렇게 처형하지 않고 로마의 법정에 떠넘기려는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을 직접 처형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설 것 같아서 그랬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늘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을 경계하는 태도를 갖고 있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돌에 맞아 죽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 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32절은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3:14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니고데모에게 말씀했던 대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됨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게 되는 구체적인 부분까지도 예고된 말씀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을 통해 예수님이 분명한 메시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는데, 빌라도의 심문에 있어서 초점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습니다(33절). 이 질문은 아마 조롱 섞인 질문이라 보입니다. 누가복음 23:2에는 유대인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소할 때 고소의 내용이 나오는데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의 다른 고소 내용은 다루지 않고 정치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만 보입니다. “네가 왕이냐?”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34절)라고 되묻습니다. 이 말은 빌라도가 하는 질문이라면 정치적인 측면을 의미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내용 때문에 하는 질문이라면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이 부분을 다시 확인하는 내용입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내가 유대인이냐?”라고 말합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야. 너희들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라는 말입니다. 33절부터 37절까지 빌라도와 예수님 사이에 주고받는 말들은 정치적인 왕과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왕에 대해 분명히 구별하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나라, 즉 이 땅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나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36절). 예수님은 “내가 왕이다”라고 대답하시면서 이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목적임을 강조하십니다(37절). 그리고 진리에 속한 자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안다고 말씀하십니다(37절). 복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그 말씀을 아는 자라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실 것이며, 주님께서 그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서 우리를 통치하실 것임을 분명히 알 것입니다.
알 듯 모를 듯한 예수님의 말씀에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묻지만 이 질문은 진지한 질문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저 “네가 진리를 알아?”라는 식의 비아냥일 수도 있습니다(38절). 복음의 진리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접근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결국 빌라도는 죄를 찾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38절). 로마의 법정으로는 죄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중의적(重意的)으로 볼 때 또 다른 부분은 무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결국 무지(無知)한 인간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4:15에서도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무죄무흠(無罪無欠) 하시기에 정죄 받으실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저 놀라운 사랑이고,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는 고난주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큐티
안창국목사의말씀묵상
#요한복음18장28절부터38절
#매일성경
#아무도판결하지않았는데도처형당하시는예수님
#껍데기만남은자들의고소로심문당하시는주님
#판결없는처형
#무죄무흠하신예수그리스도
#죄가없으신데도행악자취급받으신예수님
#예수그리스도의한량없는은혜
#예수그리스도의놀라운사랑
#고난주간
#빌라도의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