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요한복음 11:1~16/ 죽음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당당하심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2-02-05 08:52
조회
109

죽음은 인생에 있어서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니 오히려 잘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죽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긴 세월 동안 볼 수 없다는 것은 참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분이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돌아가신 분이 천국 가신 것이니 괜찮다며 해맑은 웃음으로 장례를 치르시는 유족들도 봅니다만 긴 세월 동안 헤어져야 하는 슬픔은 크나큽니다. 아들이 일 년 6개월의 군 복무를 위해 훈련소에 입소하거나, 몇 년간의 유학을 위해 집을 떠나더라도 슬픈데,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물론 돌아가신 분이 긴 투병 생활을 하셨거나 연세가 다 차셔서 돌아가셨을 땐 그 슬픔의 강도가 약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슬픔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꽤 가깝게 지내던 사랑하는 나사로라는 사람이 중병에 걸려 투병하다가 죽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병을 못 고쳐주실 리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사로의 동생들인 마리아와 마르다도 예수님께 전갈을 보내어 자기 오빠인 나사로가 중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3절). 이미 여러 사람의 중병을 고치시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셨던 예수님이시기에 아마도 예수님께서 고쳐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사로의 가족이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으시고 오히려 계시던 곳에서 이틀이나 더 유하셨습니다(6절). 6절의 바로 전에는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5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데 오히려 더 지체를 하신 것입니다. 앞절과 뒷절이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주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4절)고 말씀하십니다. 곧 십자가에서 죽으실 주님께서 부활과 영생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15절).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과 자신이 유대로 갔을 때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의 위협을 통해 죽음을 마주 대하셨으나 둘 다 개의(介意)치 않으셨습니다. 죽음은 예수님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죽음 앞에서 늘 당당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중병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지체하시고 떠나셨기에 이미 나사로는 죽은 후에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주님은 이미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11절)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곧이곧대로 잠들었다고 이해했습니다(13절). 사실 잠들었다고 하더라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니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할 때 즈음까지 자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한데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깊은 의중(意中)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나사로가 죽었다고 명백하게 다시 말씀하십니다(14절). 그런데 유대로 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유대에 갈 때마다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는 유대인들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운데 굳이 유대로 갈 필요가 있느냐고 묻습니다(8절). 제자들은 나사로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곳으로 가지 않으시고 이틀을 머무는 것에 대해 아마도 유대인들의 위험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오히려 수긍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해가 있는 낮 열두 시간 동안에는 실족하지 않고, 밤이 되면 실족하게 된다는 아리송한 말씀을 하십니다(9절, 10절). 세상의 빛 되신 주님과 함께 행한다면 실족하지 않습니다. 낮이 열두 시간이란 말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열두 시간을 의미하는 말일 것입니다. 해가 떠 있는 낮에는 모든 것이 잘 보이기에 넘어질 일이 없지만, 해가 없는 밤에는 넘어지기 쉽습니다. 빛 되신 주님과 함께 행하면 넘어질 일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하지 않느냐는 제자들의 염려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행하시는 일이라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은 빛이시기에 실족하는 일을 행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적을 통해 주님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 눈으로 직접 보고 깨닫게 하려고 나사로에게 가자고 말씀하십니다(15절).

이에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외칩니다(16절). 도마의 의기(意氣)는 대단합니다. “그까짓 거, 유대인들이 우리 주님을 죽이려고 하는데, 우리도 함께 죽으면 되지”라는 뉘앙스로 보입니다. 대단한 의리이며 의기로 보입니다. 그러나 도마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빛 되신 주님과 함께 행하면 실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시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가시는데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려고 한데도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의 길은 죽음의 길처럼 보이지만 죽음의 길이 아닙니다. 주님의 길은 생명의 길이며, 구원의 길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셨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친히 아시며,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는 분이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늦었다고 늦은 것이 아니고, 죽었다고 죽은 것이 아니며, 넘어졌다고 넘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면 결국 주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앞에 닥친 일들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빛 되신 주님과 함께 걷는다면 주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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