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요한복음 6:1~15/ 일상의 필요를 채우시는 그 이상의 주님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2-01-18 05:13
조회
93

인간은 배부르게 해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국민이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지도자를 좋아합니다. 요즘 대통령 선거 유세가 한창인데, 그들의 공약 중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입니다. 집 문제, 취업 문제, 먹거리 문제 등이 핵심에서 빠질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먹을 것을 사주면 좋아하고, 돈을 주면 좋아합니다. 돈을 넉넉히 쓰는 사람 옆에는 늘 사람이 몰려듭니다. 물론 그에게서 더 이상 나올 게 없으면 사람들이 떠난다는 게 문제지만 말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 건너편, 벳새다로 가셨을 때 큰 무리가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이적들을 많이 행하셨음을 보고 들었기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성인 남자만도 5천 명이었으니(10절, 특히 요한은 사람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성인 남자를 일컫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아이들과 여인들까지 포함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인파가 몰려든 것입니다. 요즘으로 따져도 매머드급 집회가 된 셈입니다. 저도 많은 인원이 모이는 집회나 수련회 등을 기획하고 진행해보았는데, 자는 문제와 먹는 문제가 정말 잘되어야 그 집회가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산의 대부분은 먹고 자는 일에 사용됩니다. 이 문제만 해결되어도 걱정거리가 엄청 줄어들게 됩니다. 물론 예수님께 모여든 이들의 식사를 꼭 해결해주어야 할 의무는 없었습니다. 참가비를 내고 모여든 것도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모여든 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다가 식사 때가 되자 이들의 배고픔을 걱정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먹을 것 걱정도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영적인 부분만 채워주시고, 일상의 필요를 등한히 여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도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마 6:11).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먹일 방법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계획이 있으셨습니다(6절). 그렇지만 제자인 빌립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으십니다.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빌립도 빠른 계산으로 200데나리온 이상의 금액이 필요하다고 대답을 합니다(7절). 그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이 일 데나리온이었으니 하루 일당을 5만 원으로만 계산해도 일천만 원의 금액이고, 많게 계산하면 이천만 원 정도의 큰 금액입니다. 그냥 요즘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을 6,000원으로 치면 만 명 정도가 먹는다고 했을 때 육천만 원이나 듭니다. 김밥천국에서 라면 한 그릇을 먹어도3,000원, 가장 저렴한 김밥 한 줄 값도 1,500원에서 2,000원이니 암튼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빌립은 그러한 금액을 제시합니다.

반면 안드레는 한 아이가 가져온 음식을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8절, 9절).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입니다. 그러면서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9절)라고 반문합니다. 이런 정도는 있지만 이것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가복음 6:37에서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대해 빌립이 200데나리온이나 필요하다고 답을 하자, 주님께서는 다시 마가복음 6:38의 말씀처럼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고 하셨고 이에 대해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고 보고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있는 것을 먼저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주님은 아무것이 없었어도 문제를 해결하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있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있는 것이 아무리 하찮고 보잘 것 없어도 내어놓으면 그것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알다시피 그 수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13절). 여기에 나오는 바구니는 엄청 큰 바구니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는 바구니 정도였을 것입니다만 먹고도 남을 정도로 사람들을 배를 불리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무리 작아도 주님 손에 들려지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 혼자 욕심을 채우겠다고 뒤로 감추면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내어놓으면 나도 배 부르고, 다른 사람도 배 부르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신기한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자, 사람들은 ‘역시 우리의 예상이 맞았어’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14절을 보니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하며 환호합니다. 사람들은 등이 따습고, 배가 부르면 좋아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호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순식간에 변할 환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오병이어의 기적), 의료 문제를 해결하고(병자들을 고치심), 주옥같은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고자 했습니다(15절).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군중의 환호에 물러가셔서 혼자 산으로 떠나십니다(15절). 예수님은 사람들의 환호가 어떤 의미인지 아셨습니다. 정작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환호가 어쩌면 가슴 아프셨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속으로 ‘철없는 것들…’이라고 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예수님은 생명의 양식, 생명의 떡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육의 양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명의 양식이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생명의 떡이심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채찍질에 몸이 상하여 찢겨진 자신의 몸이 사람들을 구원할 생명의 양식임을 가르치십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영의 양식에는 관심이 없어서 하나, 둘씩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주님은 일상의 필요에도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관심이 일상의 필요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영의 양식에 관심 두길 원하시고, 우리가 영의 양식을 찾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핍절하니 일상의 필요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의 양식에 마음을 두면 일상의 필요는 주님께서 반드시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작은 것이라도 주님께 드리면, 주님은 그것으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그 무엇보다도 주님께 마음을 두고,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드려 주님께서 우리를 풍요하게 채우시는 은혜를 맛보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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