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요한복음 2:13~25/ 참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2-01-07 06:53
조회
103

예루살렘 성전은 위용이 찬란하였습니다. 이 성전이 허물어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있을 수 없는 매우 참담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헐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일으키겠다”(19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을 헐라는 말도 매우 불경건한 언사(言辭)인데 심지어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삼 일 만에 다시 일으키겠다는 말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너무 황당한 말로 드렸을 것입니다.

이런 논쟁이 있게 된 배경은 예수님의 성전 청결(정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제사의 제물로 드릴 짐승을 팔고, 돈을 바꾸는 자들이 있는 것을 보시고 이들을 내쫓고 상을 엎으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16절)고 분노하신 사건입니다. 모든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이 성전 청결 사건을 다 기록하고 있는데, 요한복음을 제외한 다른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주간의 첫 주일(종려주일)에 예루살렘 성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이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두 번의 성전 청결을 행하셨다고 보기도 하고, 어떤 학자들은 성전 청결 사건은 한 번 있었지만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구속(救贖)사역에 초점을 맞추려고 일부러 앞부분에 위치하게 하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두 가지의 가능성을 다 열어놓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성전 청결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에서만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18절부터 22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다른 공관복음서에서는 성전 청결 사건을 기록하면서 성전은 하나님의 집으로 기도하는 곳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요한복음에서는 성전 청결을 행하는 예수님께 유대인들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라고 물었고 이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절)고 답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21절에서는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부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야 이 말씀을 믿었다고 기록합니다(22절).

예수님께서 성전 청결을 통해 참 성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밝히신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나아와 제사(예배)드리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와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등의 다양한 제사의 형태로 하나님께 제사하였고, 그 제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성전의 제사장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模型)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참 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성전 청결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성전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17절은 제자들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는 성경말씀(시편 69:9)을 기억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사모하다 보니 본질은 상실해버리고 성전 자체에만 집중하다가 결국 외형만 남아 온전한 신앙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로 전락한 모습을 빗대고 있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열심을 내다가 본질을 잃어버리고 외형만 따를 수 있름을 조심해야 합니다. 말씀 연구가 중요하다며 열심히 연구하는데, 연구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말씀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연구에만 치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유주의 신학과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배 의식의 형태에만 집중하다 보면 참된 예배의 본질을 상실하고 형식적인 예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제물을 좀 편리하게 드리고, 성전세를 내기 위해 성전의 세겔로 바꾸는 일을 좀 편리하게 하려고 성전 안에 제물을 팔고, 돈을 바꾸어주는 이들을 두는 것이 하나님께 제사하는 데 더 유용하다고 판단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편의주의에 빠져 진정한 헌신과 마음이 빠진 제사(예배)가 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고 있는 말씀입니다.

23절부터 25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의지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유월절에는 보통 20만 명 이상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믿었는데, 예수님은 이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곧 변하여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외치는 자들이 될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믿었다는 표현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인정하는 초기의 믿음일 뿐이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머릿속으로만 알고 인정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아마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에서 건져줄 정치적 메시아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님을 믿되 자기의 필요에 따라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필요를 채워주지 않으면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온전하지 않은 믿음입니다. 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와 주님이심을 확실히 인정하고 내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생겨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 성전으로, 우리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살고 있는지 자신을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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