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사사기 20:1~7/ 남 탓만 하지 말고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라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12-10 06:51
조회
111

이스라엘 백성이 분기탱천(憤氣撐天)하여 총궐기(總蹶起)하였습니다. 레위인이 죽은 자기 첩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쪼개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낸 일로 무슨 일인가 하여 온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각 지파의 지도자들과 칼을 찬 병사 40만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시체를 조각내어 보낸 레위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레위인은 자신이 당한 일을 보고하기 시작합니다(4절~6절). 결국 이로 인해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과 베냐민 지파 사이에 치열한 내전(內戰)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고소인만 있지, 피고인은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뭔가 문제를 진단하고 판단하려면 가해자의 이야기와 피해자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야 하는데, 가해자의 의견은 아예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모여들었지만, 베냐민 지파의 대표자는 제외되어 있습니다. 이 레위인이 당한 참사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에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기브아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 악행이지 베냐민 전체가 마음을 모아 행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베냐민 지파의 대표자도 모아서 이스라엘의 총회로 모이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는 처음부터 배제하고 모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베냐민 지파도 모이라는 통보를 받았는데도 모이지 않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3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의도적으로 베냐민 지파는 배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사를 당한 레위인의 이야기와 더불어 베냐민 지파 사람의 이야기도 듣고 판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총회적 결의를 할 때에도 베냐민 지파도 참여하도록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참혹한 일을 당한 레위인의 이야기만 듣고 극도의 분노의 상태를 갖게 됩니다.

4절부터 6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참혹한 일을 당한 레위인이 자기가 당한 일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당한 참혹한 일의 결과만 이야기할 뿐, 그 과정에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의 첩을 끌어내 기브아 사람들에게 내어준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행한 악행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악한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레위인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첩을 위해 아무런 보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첩을 내어준 것에 대해서는 함구(緘口)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요즘도 그런 일들은 주변에서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일어나고 있지요.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더 힘주어, 때로는 더 과장되게 표현하여 이야기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함구하거나 축소시키는 일은 우리에게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긴 합니다. 정직하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가감(加減)없이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레위인은 동성애를 즐기기 위해 자기를 내어달라고 요청한 불량배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고 이야기하고 자기 첩을 욕보여서 죽였다고 증언을 했는데, 과장과 축소 등으로 자기의 억울함만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7절에서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 결정을 내리라고 독촉합니다. 물론 이 레위인이 당한 일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감정적 호소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의 분노의 감정만 극대화시켜서 감정적인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감정적 결정은 매우 위험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측면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회개도 일어날 수 있고, 그래야만 문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전체적인 통회(痛悔)와 자복과 회개입니다. 그런데 회개로 나아가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처하게 만드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레위인이 당한 참혹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영적인 침체에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레위인이 첩을 들이고, 그 첩은 음행을 저지르고, 기브아의 사람들은 나그네를 대접하기는 게을리하면서 동성애를 즐기기 위해 나그네를 위협하는 일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타락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이러한 참혹한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들의 영적인 타락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어야 했습니다. 회개 운동이 일어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의 억울함만 호소했고, 남의 탓만 했습니다. 자신들도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의 악행을 비난하고 응징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어제 말씀 묵상에서도 나누었지만 차악(次惡)도 악(惡)일뿐입니다. 차악은 결코 선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함께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도 영적인 감각이 무디어져 있어서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나는 어떠한 영적 상태인지,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내가 속한 사회가 정결하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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