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사사기 16:15~31/ 머리카락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순종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12-03 07:36
조회
173

단지 머리카락의 문제였을까? 삼손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손의 머리카락이 밀린 이야기입니다. 보통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삼손의 능력이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머리카락이 잘려서 삼손이 힘을 잃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17절에 삼손이 그렇게 말하기도 하기에 더욱 그 신빙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나실인이 지켜야 할 규례 중에 하나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삼손은 이미 사자의 시체를 만지고,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고, 이방 여인과 음란하게 놀아나는 것들을 통해서 나실인으로서의 규율을 수없이 어겼습니다. 어떤 의미로 볼 땐 삼손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이 나실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습에 있어서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즉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서 이 여인을 위해 사사와 나실인으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한 것과도 같기에 삼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힘을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떠난 것입니다. 삼손은 자신이 나실인으로서의 지켜야 할 규례를 지켜야 함을 고백했습니다(17절). 그리고 이것을 어기면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도 사라질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한 여인에게 빠져서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것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들릴라의 끊임없는 요구에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들릴라를 선택할 것이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나실인으로서의 모습을 지켜나갈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결국 삼손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들릴라는 사랑이 아니라 돈을 택했습니다. 삼손의 비밀을 알아낸 후에 블레셋 사람들에게 오라고 말했고 그들은 와서 은을 들릴라에게 주었습니다(18절). 삼손은 허탄한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 사랑이 아니라 정욕으로 가득했을 뿐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붙잡아 눈을 빼고 놋사슬로 매어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는 일을 시킵니다(21절).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힐 때에도 삼손은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20절). 영적인 민감성이 전혀 없는 상태의 삼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제 뉴스에서 나이지리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한 목사 부부가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되어 방역을 위한 역학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밀접 접촉을 한 사람이 조사에서 제외되어 감염 확산이 급격하게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조차 도덕적 불감증이 만연한 것 같이 느껴져서 참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이 슬펐습니다. YTN의 한 뉴스 제목이 이러했습니다. “‘오미크론’ 감염 목사 부부의 한마디에 무너진 한국의 방역.” 이러면 우리가 아무리 전도하고, 선교한다고 해도 우리에게서 복음의 능력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부터 제대로 갖추어야 합니다. 사소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를 무너뜨리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 여인에게 말 한 마디 한 것이 삼손을 무너뜨리게 하였습니다. 정말 깨어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삼손의 영적 불감증은 우상을 섬기는 블레셋 사람들의 오만을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다곤(Dagon)의 신전에 모여서 제사하며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삼손을 불러다가 재주를 부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사사 삼손이 이방의 우상 앞에 우스개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불감증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부끄러움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손은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간구를 하며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복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28절). 그런데 참 아쉬운 것은 이때조차 삼손은 이스라엘을 구할 사사로서의 품위를 갖춘 기도가 아니라 자기의 원수를 갚는 차원에서의 기도에 그칩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상상입니다만, 삼손이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사사와 나실인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기억하며 그 사명을 마지막으로 행할 수 있도록 기도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삼손은 끝까지 자신의 감정과 개인적인 보복 등이 앞서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러한 삼손을 통해서 블레셋을 물리치는 역사(役事)를 행하십니다. 삼손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삼손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우리가 영광스럽게 쓰임 받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할 수 없이 떠밀려서, 혹은 내가 불순종하거나 온전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보다는 하나님께 온전히 사용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들이, 우리 목사들이, 우리 성도들이 그러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서길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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