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5:16~26/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라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9-12 10:48
조회
183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육신이 아무리 애써도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애쓰고 노력하면 의로워질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이들은 좌절감만 느낍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의로워지기를 포기하고 제멋대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의로워지기 어려우니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우리의 육신이 노력하는 것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율법에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의로워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율법을 그대로 다 지켜 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하나라도 어기면 율법을 어긴 자가 되고 그 율법을 어긴 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다는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은혜로 구원을 받은 후에 우리가 율법에서 자유한 자가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한 삶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다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뭔가를 애써서 노력하여 의로운 삶,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됩니다. 그것 역시 마치 율법의 짐처럼 내게 지워진 무거운 짐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의식을 통해서 거룩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 당시에는 할례라는 의식이 대표적인 이슈로 떠올랐던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복음 안에서의 자유와 거룩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무거운 짐 사이에서 딜레마(dilemma)에 빠집니다. 어떤 사람은 은혜의 복음 안에서 자유한 자가 되었으니 모든 행위에 자유를 부여합니다. 다른 지체들을 고려하지 않은 언행을 일삼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거룩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에 스스로 다시 율법을 따르던 시절처럼 여러 가지 규칙이나 규율, 혹은 종교적 의식(儀式) 등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매여서 그렇게 해야 거룩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와 철야기도회, 교회에서의 봉사, 구제, 심지어 방언과 같은 은사(恩賜) 등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요소로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지치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거룩하게 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율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육신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아갈 때 이뤄지는 것임을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16절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25절은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육신을 따라 살아가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육체의 욕심이 작용하기 때문에 온갖 악한 것들이 열매로 맺혀지게 됩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 육체를 따라 행할 때 나타나는 결과물들을 제시해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애쓰고 노력하면 잘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결과물들은 처참합니다. 그렇지만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22절, 23절). 나무는 그 뿌리(처음 뿌려진 씨앗으로 말미암은 뿌리)에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육신을 의지하면 죄악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고,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 육신으로는 죽은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산 자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은 자이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육체의 소욕(所欲)과 성령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내 육체의 소욕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선포하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면 노력하고 애쓰지 않아도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애써야 할 것은 의롭게 되려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애써야 할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에 애쓰면, 그래서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우리의 삶은 저절로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깊이 나누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참된 예배입니다. 오늘 드리는 예배에 잘 참여하셔서 주님을 깊이 누리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교제하는 것을 매일 더욱 깊게 할수록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