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3:19~29/ 율법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9-07 14:23
조회
150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린다고 하니 율법 자체는 매우 무의미하고 나쁜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율법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19절은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인간이 자꾸 범죄하기 때문에 천사들을 통해 중보자인 모세를 통해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상반(相反)되는 것도 아닙니다. 21절은 만약 사람이 율법을 통해 의로워질 수 있었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22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습니다. 여기서의 성경은 구약성경을 의미하는 말이고, 율법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율법은 인간이 죄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해주어 결국 인간은 죄 아래 놓여있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율법대로 살아간다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다 지켜 행하여 의롭게 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어렵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의(義)에 미칠 정도로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통해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23절부터는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의 관계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율법에 매여있었습니다(23절). 율법은 마치 초등교사와 같았습니다. 초등교사라고 번역된 파이다고고스(παιδαγωγός)라는 단어는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몽학선생(蒙學先生)이라고 번역을 했었고, 공동번역 성경은 “후견인”, 표준새번역에서는 “개인교사”라고 번역을 하였는데 이 직분을 맡은 사람은 주인의 자녀의 교육과 훈육을 책임지는 종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주인의 뜻에 따라 품성이나 지식이나 생활 등을 지도하는 책임을 맡은 종인데, 주인의 자녀가 성인이 되면 그 역할이 끝나게 됩니다. 그런 것처럼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로 의롭게 됨을 얻을 때까지 잘못된 길로 가지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돕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에게 구속(救贖)의 은혜를 베푸셨기에 이젠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26절),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아서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기에(27절) 이젠 이 세상의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 아브라함의 자손, 즉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28절, 29절).



이제 우리는 율법 아래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살아가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율법에 매여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뭔가 어떤 행위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서 복음의 능력이 역사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유함에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 축복과 자유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되게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