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3:10~18/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라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9-06 09:19
조회
140
율법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 중요합니다.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을 주의하라고 말씀하면서 유대인들이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의롭게 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시는 것은 율법을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하려고 계획한 것이 아님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15절~18절). 약속이라는 것은 사람들끼리도 서로 정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인데(15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구원을) 얻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고 말씀합니다(14절). 창세기 13:15, 17:8, 22:18 등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 네 후손, 네 씨란 표현을 사용하실 때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사용하셨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여러 후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민족이 복(구원)을 얻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약속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430년이나 지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보다 앞서는 것인데, 율법이 생겼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폐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17절).
율법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서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계획 안에 율법도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는 기준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율법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율법은 지키라고 주셨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높은 의(義)의 기준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의(義)임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율법 아래 살아가는 자들은 저주 아래 놓여있음을 깨닫게 합니다(10절, 11절). 12절은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자들은 한번 그렇게 살아봐라는 의미와 같은 말씀입니다. 일종의 반어법적 표현입니다. 율법으로는 도저히 의롭게 도리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율법의 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의(義)의 표준으로 제시하신 율법조차 행하지 못해서 결국 죄인으로서의 저주 아래 있는 인간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그 저주를 십자가에서 짊어지시고 담당하셨습니다(13절).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었습니다(14절). 그래서 이방인들까지 포함된 모든 민족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그 믿음을 통해 구원받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주어진 도구와 같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도구가 마치 구원을 이루는 해결책인 양 매달렸고, 오히려 자신의 죄를 더욱 드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율법에 매달리면서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의(義)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과 죄인 됨을 율법으로 보여주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어리석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는 도구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주목하고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