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갈라디아서 2:11~21/ 복음의 진리 안에서 당당하게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9-04 12:45
조회
325

자신이 확고하게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그 믿는 바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 진리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한다면 비겁한 행동입니다. 자신이 확고하게 믿는 것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게바)가 안디옥을 방문했을 때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다가 할례자들이 오자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은근슬쩍 그 자리에서 떠나버린 일이 발생했습니다(12절).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수장(首長) 역할을 하고 있던 베드로의 그런 행동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고, 마치 율법을 따라야만 진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왜곡된 것을 가르치는 결과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라면 함께 교제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게 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심지어 바나바조차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거리를 두는 결과는 낳았습니다(13절). 그래서 바울은 베드로를 면전(面前)에서 책망했습니다(11절, 14절).

베드로도 하나님께서 로마의 백부장인 고넬료에게 보내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경험한 이후에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율법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이미 전파하고 있었기에 율법에 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베드로에게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14절)고 반문하면서 베드로를 책망한 것입니다. 즉 베드로도 유대인이지만 율법을 따라 살지 않고 복음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있기에 전통 유대인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어찌 이방인들에게 전통 유대인들처럼 살라고 하는 것처럼 하느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15절에서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라고 말씀합니다. 즉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은 유대인으로 살아왔고, 소위 죄인이라고 일컫는 이방인은 아니지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율법에 의해 의롭게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강조합니다(16절). 그러면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라는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면서 우리 스스로 의롭게 되려고 노력하다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노력한다고 의로워질 수는 없기에 결국 죄인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인 되게 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이 우리를 의롭게 되는 일에 부족하냐고 반문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권능은 우리를 구원받게 하기에 100% 완전합니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구원받는 조건에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을 받아놓고 다시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8절).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는 죽은 자입니다(19절). 즉 율법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20절의 말씀을 선언합니다. 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저는 요한복음 3:16과 더불어 오늘 본문의 20절은 복음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말씀해주고 있는 정말 중요한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의 중심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몸부림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육체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우리 자신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렇기에 이제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율법의 행위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21절).

이제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행위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이고,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죽은 자이기에 이제는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내 자아를 그리스도께 맡기고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른다면 복음 안에서 능력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확고하게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선한 행위를 강조하고, 종교의식을 강조하는 이들 앞에서 이 진리를 당당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오늘도 내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가는 모습이 내 삶에 온전히 드러나게 하는 삶으로 승리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