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시편 71:1~16/ 무기력함 속에서 나의 피난처 되시는 주님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8-29 10:12
조회
179

무기력해질 때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나는 쇠약하여 힘이 없고 마치 하나님조차 나를 돕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그래서 대적들이 기고만장하여 달려들 땐 더욱 허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편 71편은 누가 쓴 시인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썼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하고, 다윗이 썼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아마도 다윗이 쓴 것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이 더 많습니다. 예레미야든, 다윗이든 고통과 어려움을 많이 겪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온전히 전하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겪었던 이들입니다. 아무튼 시편 기자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징조같이 되었”습니다(7절). 표준새번역은 “나는 많은 사람에게 비난의 표적이 되었으나”(7절)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하나님만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 사람들에게 너무 두드러지게 보여서 오히려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적당히 좀 하지, 뭘 저렇게까지 하려고 해”라는 말을 듣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살아가려고 하면 이런 소리를 자주 듣게 됩니다. 이미 만연되고 고착화된 비본질적인 모습을 벗어버리고 보다 본질적인 것들에 충실하려고 해도 듣는 말이기도 합니다. “너무 앞서가지 마. 우리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냐. 그러니 대충 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면서 튀지 말고 가자고~!” 이런 소리를 듣기 십상입니다. 그 정도의 소리만 들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대적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려고 하는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온갖 비방과 손가락질을 해대고 더 나아가 오히려 짓밟으려고 합니다(10절, 11절).



이런 상황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피합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시편 71편은 반복적으로 하나님께 피한다는 표현과 하나님이 숨을 바위가 되시고, 반석과 요새가 되신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만이 참된 피난처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만이 소망이시며 의지할 분이심을 고백합니다(5절, 6절). 시편 기자는 지금 나이가 든 상태인 것으로 묘사됩니다(9절). 그러나 시편 기자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줄곧 의지하고 신뢰했었음을 고백하면서(5절, 6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이 한결같았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실한 믿음이었기에 고통과 어려움을 겪을 때에, 대적들로부터 무고(誣告)한 공격을 받을 때에 그냥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아 하나님께 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둔 시편 기자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면서(2절, 12절) 하나님께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갑니다(14절). 그리고 16절은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표준새번역은 이 구절을 “주님, 내가 와서 주의 능력을 찬양하렵니다. 주께서 홀로 보여주신, 주의 그 의로우심을 널리 알리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여전하여 결국은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공의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피난처 되신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며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믿기에 이렇게 자신있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은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사방에 대적으로 에워싸여 피해 나갈 구멍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무기력하여 도무지 헤어날 길이 없을 것 같은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이 되셔서 공의로우심으로 구원하시는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피난처 되신 주님이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이고,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