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시편 69:19~36/ 나의 수치와 능욕을 아시는 주님께 드리는 감사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8-27 09:51
조회
192
내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데, 까닭 없는 비방을 당하고 있는데, 그래서 수치를 당하고 있는데 나를 변호해주거나, 내 편이 되거나 하다못해 나를 긍휼히 여기는 자조차 없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마 다윗도 그러했나 봅니다. 그래서 20절에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탄식합니다. 오히려 내게 쓸개나 식초를 주어 더 괴롭게 하는 자들이 가득합니다(21절). 26절은 “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라고 탄식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고통을 당할 때 긍휼함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핍박하고 그 슬픔을 더하게 하는 이들로 인해 그 아픔과 슬픔이 더하게 된 상황을 언급합니다. 아마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야의 아내(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치열한 전쟁터에서 죽게 하고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다윗은 계속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이 저질렀던 죄악에 대한 통회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 하나님께서 치셨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그때에 누군가 옆에서 “너는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이야기해주면 좋으련만 오히려 “거봐. 네가 잘못했으니 그런 고통을 당하는 거야”라고 비방하는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당하고 있는 고통의 현실보다 주변에서 손가락질하는 자들의 비방이 더 큰 아픔과 슬픔을 줍니다. 사실을 확인하기보다 방관하는 자들의 모습조차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편 69편은 그러한 한탄으로 일관된 시가 아닙니다. 19절은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 고백은 다윗을 그 고통 속에서도 견디어내게 하고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가게 하는 매우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십니다”라는 고백은 모든 고통을 이겨내게 합니다. 아무리 주변에 내 편이 없고, 나를 비방하는 자들로 가득하고, 나를 변호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상황을 아신다는 것은 위로가 됩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 그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해결하실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시고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저도 사역하면서 때로 억울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하고, 근거 없는 억측으로 비방을 받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저를 견디게 했던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은 그 모든 진실을 드러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요동하지 않고, 굳이 맞서지 않고 그 모든 상황을 묵묵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두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신다면 더 이상 억울함 속에 주저앉아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은 이 모든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가 보고 있습니다. 22절부터 28절까지의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대적들에게 어떻게 해주시길 바라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적들이 다윗을 고통 속에 처박아 놓고 자신들은 평안하게 먹고 즐기고 있지만 오히려 그 평안과 안정이 올무와 덫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22절).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그들의 장막이 황폐케 해달라고 간구합니다(24절, 25절). 악인이 잘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더 평안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살아있습니다. 모든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명명백백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에만 몰두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내 욕심으로 가득할 때엔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고통과 수치스러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백으로 나아갑니다. 지금은 여러 상황으로 상처받아 슬픔을 겪고 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고 다시 높여 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29절). 하나님께 제사(예배 의식)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귀한 존경과 신뢰를 표현하는 것이지만, 먼저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감사로 고백하는 마음을 고백합니다(30절, 31절). 그러면서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32절)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찾는 자들은 그 고통과 억울함 속에 파묻혀 있지 말고 마음을 소생하게 하라고 외칩니다. 소생하게 하라는 말씀은 소생을 위해 마음을 굳게 다지고 몸부림치라는 말씀입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부여잡고 그 상처에 집중하지 말고 치유를 향해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좌절과 절망에 주저앉아있지 말고 회복을 위해 마음을 다독이라는 말씀입니다. 억울함으로 인한 고통 속에 남아있지 말고 그 억울함에서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33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35절, 36절).
아직도 여전히 누군가의 비방으로 인해 그 오해가 계속될 때도 있습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이리저리 이야기하는 말들을 듣고 나를 향한 오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오해로 인해 등을 돌리기도 하고, 냉랭한 태도로 나를 바라보기도 하기에 마음에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로 인해 성실하게 잘해나가던 사역이나 일들이 틀어지는 결과를 맛보기도 하여 더욱 마음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기에 그 수렁에 머물러 있지 말고 우리 마음을 소생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반드시 다시 높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마음을 소생하게 하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