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시편 69:1~18/ 깊은 수렁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8-26 09:26
조회
656

내 행위와는 관계없이 억울하게 누명을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나쁜 사람으로 오인(誤認)되기도 합니다. 오히려 선의(善意)로 행한 일들이 악의(惡意)처럼 회자(膾炙)되는 억울함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한 때에 믿었던 자들이 오히려 내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고 나를 향한 비방과 손가락질을 해오고, 내게서 등을 돌리는 일을 겪게 되면 그 억울함은 극에 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말 신실한 자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변명하거나 항변하지 않기에 그 오해는 더 커져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확대되기도 합니다.



시편 69편은 이러한 억울함 속에 놓인 다윗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시편입니다. 시편 69편의 배경은 잘 알 수 없지만,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은 압살롬의 반역이나 열왕기상 1장에 나오는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야의 반역이 배경이 되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윗이 겪은 억울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표현한 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다윗은 한 사람의 배신과 반역만이 아니라 자신의 충신(忠臣)이었던 이들까지 반역자의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해오는 상황을 겪으면서 더 큰 충격과 배신감과 억울함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상황을 마치 깊은 물에 빠진 것처럼, 수렁에 빠진 것으로 묘사합니다(1절, 2절, 14절). 수렁은 질펀한 진흙으로 이루어진 웅덩이로 물보다 헤어나오기 힘든 늪과 같은 곳입니다. 허우적거릴수록 더 빠져들어 가는 늪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나오기 힘든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15절에서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는 것을 볼 때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도록 밀려드는 물결, 혹은 수렁의 입이 닫히는 상황으로 묘사된 것처럼 그 속에 빠져 올라갈 희망마저 막혀진 상황까지 다다르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최악의 상태까지 이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당하는 고난은 까닭 없는 것이기에 그 마음의 고통은 더욱 컸습니다. 차라리 내가 잘못하여 당하는 고통이라면 명백한 이유가 있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까닭 없이 당하는 고통과 고난은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4절). 오히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하는 것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라면 더욱 억울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7절). 압살롬이나 아도니야나 모두 자신이 왕이 되려고 아버지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다윗은 왕위를 계승함에 있어서도 제 생각대로 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왕위를 계승하길 원하시는가 하는 것이 우선적이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는 주변 사람들, 특히 왕자들은 정치적인 이유와 자신의 욕심 때문에 다윗에 대해 못마땅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의 정치적 상황을 보고 정황에 따라 움직였다면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그대로 행하려는 다윗의 정직함과 강직함이 오히려 어려움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살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비방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토로(吐露)합니다(9절~11절). 주변의 사람들이 다 비난하고 비아냥거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고 있다고 탄식합니다(12절).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합니다. 그런데 이에 앞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5절)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대적들 앞에서는 자신이 당당할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우매함을 고백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당당할 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기도로 나아갑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종종 억울한 상황을 겪기도 하지만, 그 억울함이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이 의롭다는 당당함이 되면 안 됩니다. 욥이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 자신이 부족한 자임을 고백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하게 되었는데,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과 억울함 속에서도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죄인 됨을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내가 억울하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나의 의(義)를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억울한 상황은 분명해도, 완전한 의(義)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내 의가 내세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늘 겸허해야 합니다. 아무리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때라도 내 의(義)를 하나님 앞에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내세울 우리의 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윗은 자기로 말미암아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그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간구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6절은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려고 하는 자들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던 자들이 위축되어 그 믿음대로 살아가지 않게 되는 일이 없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저도 이런 기도를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들이 잘 되는 축복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감이 헛된 일이 아님을 경험하여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소망으로 삼는 자들이 늘어가게 하옵소서.”



다윗은 자신의 형제들이나 가까운 친척들에게조차 버림을 받는 고통을 겪습니다(8절).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잃지 않습니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3절)라고 고백합니다. 목이 마를 정도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쇠할 정도로 하나님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합니다. 16절부터 18절에서도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는 기도로 부르짖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신뢰하며 바라봅니다(16절).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믿었기에 하나님께 소망이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비탄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믿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 깊은 수렁에서 나를 건져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을 겪게 될 때가 많습니다. 나를 향해서 기가 막힌 비방거리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답답해져 오고, 그 억울함에 잠이 안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리고 그 깊은 수렁 속에서도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결국 건져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아직 내게 있습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