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시편 63:1~11/ 황폐한 광야에서 누리는 만족과 감사의 고백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8-18 12:30
조회
230

처참한 상황 속에서 감사하며 찬양을 할 수 있을까요?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성경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와 찬양을 잃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실상에서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자신의 자식이 자기를 죽이려고 반역을 일으켜서 허겁지겁 피신을 하면서 메마르고 황폐한 광야를 지나고 있는 상황에서 감사와 찬양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의 아들인 압살롬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쫓기고 있는 다윗 왕이 광야에 머물면서 지은 시가 오늘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를 지지했던 유다 지파까지도 대부분 압살롬을 지지하는 것으로 마음이 돌아갔으니 믿을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서는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인데, 전능자, 창조주를 일컫는 말입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다윗은 전능자, 창조주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메마르고 척박한 땅, 황폐한 광야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을 앙모(仰慕)한다는 표현도 사용하고 있는데, 앙모한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마흐”(כמה)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어떤 한 대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집중하여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다윗이 이런 상황에서 압살롬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 유다 지파의 배신에 의한 배신감,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게 된 모든 원인들에 대한 짜증과 분노에 자신의 마음을 두고 있었다면 다윗은 한탄과 분노의 감정과 억울함과 불평으로 가득한 말들을 내뱉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잘 아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갈급하게 찾으면서 하나님을 앙모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2절 말씀처럼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지금 다윗이 광야에 머물고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여기서 말하는 성소에서 주를 바라본다는 표현은 그 이전에 늘 성소에서 주님만을 바라보았던 다윗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시기에 성전이나 광야나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 성소가 될 수 있기도 합니다. 6절에서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광야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잊지 않았던 모습이 보입니다. 아무튼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태도를 평소에도 늘 습관처럼 갖고 있었기에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로부터 문제의 해결을 찾아가는 태도를 보일 수 있었습니다. 흔히 내공(內功)을 쌓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경건의 능력은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생기는 것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다져졌을 때 위급한 상황에서 그 내공이 드러나게 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음에도 성령님의 강권적(强權的)인 역사(役事)로 넉넉히 이길 수도 있지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시련이나 위급한 상황이나 절박한 상황에서는 평소에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다져놓은 이들이 훨씬 그 상황에서 넘어지지 않고 이겨내기가 쉽습니다. 그렇기에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갖는 것은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다윗이었기에 3절 이후에 나오는 말씀들은 다윗이 처한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3절)고 고백합니다. 표준새번역에서는 이 말씀을 “주님의 한결같은 그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가 입술로 주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의 생명, 우리의 목숨인데 이 생명보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인자하심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가치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압살롬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모든 상황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귀히 여기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4절)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향해 마음 다해 찬양하고 있습니다. 평생토록 그렇게 찬양하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면, 하나님께 집중하면, 하나님을 앙모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다윗이기에 만족함을 고백합니다. 사실 다윗이 처한 상황은 척박하고 불편하고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5절)라고 고백합니다. 마치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처럼 마음이 만족하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만을 앙모하는 자들은 불편함 속에서도 만족함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분노할만한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서 있는 자들을 도우시는 분이심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하나님께 즐거이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7절~10절). 그래서 다윗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한다고 고백합니다(11절). 반역을 당하여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에서 쫓겨 지내고 있는 다윗의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고백이지만 이러한 고백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다윗의 모습이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하고, 죽을 만큼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선의(善意)로 행했는데 악의(惡意)로 오해를 사기도 하고, 정직하고 순수하게 행동했는데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 우리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윗의 다른 시편을 볼 때엔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도 많은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론 하나님만 앙모함으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주님으로 인한 영혼의 만족과 감사를 경험하며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는 신앙의 극치를 누리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