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이사야 56:9~57:13/ 아, 벙어리 개같은 지도자들아, 정신 차려라!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8-05 17:18
조회
244

지도자들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비참한 일입니다. 나라도 그러하고, 기업체도 그러합니다만, 교회의 지도자들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심각한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있는데 지도자마저 바르지 못할 때 이스라엘은 여지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부패한 종교지도자들로 인해 신앙이 바로 서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은 신랄하게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독설(毒舌)을 퍼부을 정도로 책망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교회의 지도자들이 부패할 때마다 암흑기(Dark Ages)라고 불릴 정도의 희망이 없는 참담한 시절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기독교를 바라볼 때도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나 중세 암흑기의 사제들과 같은 모습이 자꾸 눈에 보인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를 포함한 목사들과 교회의 중직자(重職者)들은 지금의 교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여겨집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계속되다가 다시 한 번 이스라엘(유다)의 지도자들의 추악한 모습을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56장 9절부터 12절에서는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추악한 행태를 꼬집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맹인이고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56:10). 요즘의 말로 말한다면 개자식들이라고(이건 성경의 표현을 그냥 따라 한 것일 뿐입니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56:11). 탐욕에 빠져 만족할 줄 모르는,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자들이라고 지적합니다(56:11). 매일 술독에 빠져 쾌락과 육신의 향락에만 빠져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56:12).



요즘의 교회들은 어쩌면 너무 부요합니다. 물론 아주 작은 교회들이 더 많긴 하지만, 교회들이 너무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도 아직 건강한 교회, 복음을 살아가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서 그 말씀대로 행하려는 교회들도 적지 않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잘 정돈된 시스템과 규모적으로 어느 정도 큰 교회를 추구하는 데 집중합니다. 손을 펴서 나눌 줄 모르고, 단순한 복음의 진리로 향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교회를 개척해도 모두 큰 교회, 안정적인 교회의 규모를 꿈꿉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규모의 교회들과 그 목회자들은 큰 규모에서 누릴 수 있는 안정감과 인기와 부유함과 권력에 취해서 그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규모의 논리에 의해 당당함을 넘어서서 교만함과 자만감으로 가득 한 이들도 꽤 눈에 보입니다. 총회에 가면, 교계 지도자들의 모임에 가면 그러한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눈에 보입니다. 그만큼 타락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향해 몰지각한 목자들이라고 책망한 말씀(56:11)이 우리를 향한 말씀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이렇게 지도자들이 타락하니 그 공동체가 제대로 설 리가 만무합니다. 57장 1절부터 13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57장 본문에 등장하는 침상(2절, 7절, 8절), 상수리나무 사이, 푸른 나무 아래(5절), 매끄러운 돌들(6절) 등은 모두 우상숭배를 의미하는 것들입니다. 침상은 게으름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문맥으로 볼 때엔 그 당시 신전 창녀들과 성적인 관계를 나누는 것에 대한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됩니다. 상수리나무나 푸른 나무 등은 그 당시 우상숭배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고, 매끄러운 돌들도 계절에 따라 하천에 흐르는 수량(水量)이 매우 달라지는 그 지역에서 하천의 매끄러운 돌들을 골라 숭배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 우상들에게 자녀를 도살하여 제물로 바치는 악한 행위까지 일삼은 것으로 보입니다(5절). 특히 몰렉(Molech, 9절)이라는 우상에게는 자식을 제물로 바쳐 불로 태우는 의식이 있었는데 몰렉 신을 숭배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가 만연 하다못해 우상숭배를 위해 피곤함도 무릅쓰고 먼 곳까지 가서 우상숭배를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보입니다(9절, 10절). 우상을 섬기는 데 있어서 무척이나 지극정성을 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하니 오히려 의로운 자들은 무시를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57장 1절은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라고 비참한 현실을 꼬집습니다. 바른말 하는 자들이 오히려 무시를 당하고, 바르고 진솔하게 사역하려는 자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자들이 오히려 비웃음을 당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요즘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적당히 좀 해. 그러면 여기에서 못 버텨.”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현실이라면 잘못 가도 한참 잘못 가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세상물정을 모르는구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렇게 살아. 참 순진하기는….” 세상은 이렇게 말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는 안 되지만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그런 형편이라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요? 그렇지만 그러한 비아냥과 비웃음과 비판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정직하고 바르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고, 그러한 교회로 세워가야 합니다. 57장 2절은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의 침상은 아마도 죽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의롭게 살려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참된 평안으로 들어가서 쉼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57장 11절은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말미암아 놀랐기에 거짓을 말하며 나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나를 경외하지 아니함은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그렇게 탐욕과 거짓에 빠져서 살아가고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를 물으십니다. 그들이 악하게 살아도 하나님께서 잠잠하다고 여겨서 그런 것이냐 되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잠하신 것은 하나님이 안 보셔서, 하나님이 안 계셔서, 하나님이 그 모든 행위를 묵인(默認)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입니다. 12절은 “네 공의를 내가 보이리라. 네가 행한 일이 네게 무익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잘난 척하며 의롭게 살았다고 뻐기는 그 모든 것들이 무익하고 헛된 것임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결국 그들이 의지하고 섬겼던 것들이 허망한 것들이며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처분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온전히 서게 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세상이 참 어둡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정직하지 못한, 탐욕과 이기적인 욕심에 빠진, 규모에 의한 권력을 누리는 모습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교회들을 찾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그리스도인, 교회로 온전히 세워져 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