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이사야 55:1~13/ 엄청나게 비싼 잔치를 공짜로 누리는 축복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8-03 08:28
조회
157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저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슈퍼마켓에 가서도 1+1로 판매하는 상품을 구입하거나 사은품을 덤으로 주는 상품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의 속담 중에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짜로 얻는 물건에 대해서는 귀한 줄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매우 헤프게 사용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거저 받는 것이 무조건 귀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도 거저 받지만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주어지는 것들은 대부분 거저 얻는 경우가 많지만 매우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이 기록되고 있는데, 마치 잔치를 벌여놓고 초대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를 지니고 있습니다. 포도주와 젖, 좋은 음식과 기름진 음식을 차려놓고 와서 먹고 마시며 즐기라고 초청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공짜”라고 말씀합니다(1절, 2절).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시는 1절은 사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거저 주는 것이기에 돈 없이 와도 되지만 사라고 표현합니다. 사실 서로 맞지 않는 두 표현이 함께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 주어지는 것들이 이미 값이 지불된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공짜라고 해서, 거저 준다고 해서 값어치 없는 것들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돈 없이 와서 맘껏 즐겨도 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매우 값어치 있는 것들임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엄청난 대가를 치른 매우 값어치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셔 들였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여러 종교들 중에 기독교는 구원에 이르는 가장 쉬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오히려 믿지 않는 이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너무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오히려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거저 얻는 것처럼 느껴지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에 얻어지게 된 것입니다. 거저이지만, 값어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종교들이 제시하는 구원의 방법들은 애쓰고 노력하지만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2절은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엄청난 잔치를 벌여놓고 우리를 초청하셔서 맘껏 먹고 마시고 즐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잔치로 비유한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을 상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절은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종종 떡(빵)과 같은 양식이나 물과 포도주와 같은 음료로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먹어야 할 영적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음식을 먹어야 몸이 힘을 얻어 활동할 수 있듯이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영혼이 힘을 얻고 우리의 영이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에게는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3절). 4절과 5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면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서, 열방을 인도하는 자가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약속이지만, 결국 이스라엘에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세상을 구원하실 것에 대한 약속의 확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따르면 이 놀라운 축복을 이스라엘이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6절)고 권면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날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을 때는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여 부르실 때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하나님께 응답해야 합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 응답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는 우리의 생각 때문에 자꾸 머뭇거린다는 것입니다. 7절은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방법이 자기의 생각에 타당하지 않다고 느끼기도 하고 뭔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서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따지고 들면서 이해하지 못하고,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8절과 9절은 “8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크기만큼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계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전능자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자이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고, 100%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다면 사실 우리가 피조물이라고 할 수 없고, 하나님을 절대자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신 말씀이 헛되이 되돌아오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11절).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가시나무와 찔레처럼 찌르고 고통스럽게 하던 것들을 잣나무와 화석류(花石榴, Myrtle)와 같은 유용한 나무로 바꾸시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평강과 기쁨을 주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놀라운 축복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초청하시고 있습니다. “와서 내가 준비하는 풍성한 음식과 음료를 값없이 사서 잘 누리라”고 부르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내 생각과 염려를 버리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께 나아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면 오늘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강과 기쁨을 우리는 축복된 삶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내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놀라운 잔치의 삶이 오늘도 펼쳐지리라 믿습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