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이사야 51:17~52:12/ 비틀거리는 자여, 거기서 떠나 하나님의 통치로 돌아오라!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7-31 11:11
조회
173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모습, 어쩌면 오늘의 교회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우린 제대로 하고 있어”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들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요즘의 교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가 아닌가요? 그 말은 이 시대의 교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마치 “나는 빼고, 우리 교회는 빼고”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좀 진중하게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 역시, 우리 교회 역시 “어쩔 수 없다”, “쉽지 않다”는 핑계를 대면서 순전한 교회의 모습,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세워가는 일을 자꾸 유보(留保)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오늘 본문 51장 17절 이하에서는 이스라엘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분노의 잔을 마셔서 황폐와 멸망, 기근과 칼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희망도 사라졌습니다. 51장 18절을 보면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네가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더 이상 이스라엘을 이끌 지도자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자손들 중에서도 그러한 자를 찾기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희망이 사라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에 직면하여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상황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을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요즘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되는 것은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스스로의 조절 능력을 상실한, 스스로 정화할 능력을 상실한,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요즘 교회들의 모습은 세상에 위력(威力)으로 뭔가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는 것이 보여 안타깝습니다. 물론 교회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교계지도자들이라 불리는 일부 세력들이 정치 세력화하여 조직의 힘을 이용하여 뭔가를 행사하려는 모습이 종종 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은 위력(威力)을 행사하여 세상을 바꾸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러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그 정체성을 잊고 자꾸 스스로 하나님의 일하심보다는 커져버린 자신의 세력을 가지고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교회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모습은 마치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가 남아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51장 22절,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비틀걸음 치게 하는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거두시고 그 잔을 오히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면 패배한 군사들을 엎드리게 하고 그 위를 걸어가는 그 당시의 관습처럼 그렇게 그들을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 말씀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52장으로 넘어가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52장 1절은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고 외칩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듯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제는 깨어 일어나서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에 부정한 자, 즉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 민족이 들어오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술에 취한 듯 온갖 추한 모습을 보였던 이스라엘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새롭게 단장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속량(贖良)을 선포합니다(52:2, 3).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값없이 팔렸고(52:3). 까닭 없이 잡혀갔다고(52:5) 말씀합니다. “값없이”, “까닭 없이”라는 표현은 억울하다는 표현과는 좀 다른 말입니다. 이 표현은 이스라엘의 측면에서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을 잡아간 앗수르나 바벨론의 측면에서 하는 말입니다. 앗수르나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잡아간 것은 그들이 강해서, 그들이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그렇게 되었을 뿐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설사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용하셨을 뿐이지, 악한 세력이 잘나서나,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술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는 이들을 회복하여 구원하시겠다는 소식은 너무 기쁜 소식입니다. 자제력도 잃고, 분별력도 잃고, 절제력도 잃어서 비틀거리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통치하시겠다는 소식은 놀랍도록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52장 7절은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고 고백합니다. 이 기쁜 소식은 단순히 고통에서 건져내고, 비틀거리던 이들을 다시 세워 회복하겠다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된다는 소식입니다. 이러한 소식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52:9). 이로 인해 하나님이 전능자이시며,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의 주관자이심이 밝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52:6).
하나님은 이렇게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면서 포로되었던 이방 나라에서 나올 때 부정한 것도 만지지 말고, 정결하게 그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52장 11절은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게 될 때 하나님 나라에서 부정하게 여겨지는 것들은 만지지도 말고 속히 떠나야 합니다. 이젠 하나님의 기구, 즉 여호와의 성전에서 사용되는 기구들을 메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자들이기에 정결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에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셔서 도망치듯 황급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하나님의 호위 속에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52:12). 하나님의 구원은 이렇게 분명하고 당당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비틀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든든히 서서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할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함께 비틀거리고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중심을 잃고, 하나님을 잊고 비틀거리는 우리를 향해 우리 주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회복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해주시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정결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하시는 그날,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오늘, 우리는 그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비틀거리는 세상에서 함께 비틀거릴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순간, 순간 경험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