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욥기 19:1~29/ 상황에 따라 변하는 친구들, 여전히 신실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3-11-24 09:30
조회
47

물리적인 고난과 고통이 나를 힘들게 할 때 견디기 어려워도,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아무도 나를 지지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위로하거나 격려하지 않을 때입니다. 외톨이가 되었다는 외로움은 그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하는 요인(要因)이 됩니다.

가장 비천한 처지에 처했을 때 함께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을 때, 내가 넉넉하고 부유할 때, 내가 뭔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땐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면서 교제하다가, 그러한 모든 자리와 위치에서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등을 돌리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욥도 그러한 것을 경험하며 한탄합니다. 욥이 모든 것을 잃고 극심한 고난에 처하자 형제들과 친척과 친지들이 욥을 돌아보지 않습니다(13절, 14절). 심지어 종들도 욥을 무시합니다(15절, 16절), 그리고 아내도, 자식도, 어린아이들도 자신을 업신여깁니다(17절, 18절). 가깝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조차 오히려 욥을 비난하고 정죄하기에 바쁩니다(19절). 욥은 그저 육신의 고통에 남아 혼자 처절한 고통과 외로움만 호소하고 있습니다(20절). 욥이 부유하고, 영향력이 막대할 땐 모두 욥을 존경하듯이, 욥을 친한 친구처럼 여기며 다가왔었는데, 모든 것을 잃고 심각한 질병까지 앓으며 신음하고 있자 모두 욥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합니다(21절, 22절). 하나님이 자신을 치셨지만, 친구들은 이러한 욥을 불쌍히 여겨야 할 텐데, 왜 친구들도 자기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자신을 정죄하고 괴롭게 하느냐고 호소합니다. 18장에서 빌닷은 욥에게 독설(毒舌)을 퍼부으며 정죄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욥은 마음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느겼습니다(2절, 3절). 말로 주는 상처는 마음에 엄청난 고통을 줍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육신의 상처보다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자신을 위로하고, 그 아픔을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어쭙잖게 진리라는 잣대로 욥을 정죄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런 어쭙잖은 충고를 들은 욥은 “내가 죄를 지어서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너희들은 의로우냐?”고 되묻습니다(4절).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합니다(6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자신이 이러한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외쳐도 아무런 응답도 없고, 도대체 정의(正義)가 살아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자신의 모든 영광과 안정됨을 거둬가시고, 온갖 고통과 아픔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께 한탄합니다(7절~12절). 살아가다 보면 정말 억울하게 부당(不當)한 대우(待遇)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것에 대해 소리 높여 억울함을 호소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슬픔과 아픔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욥이 그러하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이러한 억울함과, 그러한 처지에 놓여있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정죄하고 비난하기에 바쁜 이들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책에 기록하면 좋겠다고 호소합니다(23절, 24절). 그만큼 욥이 겪는 마음의 고통은 심하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자신의 처지와, 이에 대한 친구들의 깊은 성찰(省察) 없는 무의미한 정죄와 비난에 대한 아픔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렇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욥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언젠가 대속자(代贖者)가 자신을 위해 나서게 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25절). 새번역 성경은 대속자를 구원자로 번역했습니다. 혹시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26절, 27절). 지금은 알 수 없는 혹독한 고난과 고통을 겪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구원자를 준비하셔서 하나님을 뵐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호소합니다. 욥은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主權)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욥의 친구들이 어떻게 해서든 욥을 비난하고 정죄하려고 하여도(28절) 하나님께서 의로운 심판장이 되시기에 분명히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져주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욥은 비난하고 정죄하는 친구들이 하나님의 칼로 형벌을 당하게 될 것이니 그것을 두려워하라고 일침(一針)을 가하고 있습니다.

욥은 끝까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어도, 그래서 극심한 고통과 폐부(肺腑)를 찌르는 듯한 친구들의 무자비한 비난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있어도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모든 것을 바로 잡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견디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욥이 고백한 것처럼 육신이 죽은 이후에야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욥은 주권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주변의 상황을 보면 정말 납득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받아들이기 힘들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상황과 환경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의로우심과 선하심을 바꾸어놓지 않습니다. 어떠한 상황이어도 하나님은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속성(屬性)을 그대로 갖고 있으십니다. 상황과 환경을 언제든지 바뀔 것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함께하십니다. 그 믿음으로 하루를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나 또한 친구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의 상황에 변하는 자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신실한 친구가 되는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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