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이사야 48:1~11/ 철면피들아, 너를 연단하리라.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7-25 12:35
조회
200

“우쭐대지 마. 네가 잘나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야.” 주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철면피”(鐵面皮)라고 부르십니다. 구약성경에 종종 등장하는 목이 곧은 백성(신 9:13)이라는 표현이나 목이 뻣뻣한 백성(출 32:9)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4절에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을 하나님은 이미 잘 알고 있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부터 그러한 자들입니다. 8절은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선하고 의로워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 은혜로 인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늘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선민(選民)이며, 더 나아가 성민(聖民)이라고 자부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선택했다는 의미에서는 성민(거룩한 백성)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그들은 그러한 자격에 들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1절은 “야곱의 집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너희는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허리에서 나왔으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면서도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도다”라고 한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면서도 진실과 공의가 없다고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2절은 “그들은 거룩한 성 출신이라고 스스로 부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며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나”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성(일차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을 지칭합니다.)에 속한다고 자랑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4절 말씀처럼 완고하고 목이 곧고, 철면피의 모습을 한 자들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씁쓸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성도라 불리면서도 진실이 없고, 공의가 없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까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종교 의식에는 잘 참여하면서 일상에서는 여전히 자기의 욕심과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계획에만 집중하며 하나님과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모세의 율법을 통해,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통해 누누이 말씀해오셨습니다. 3절에서도, 5절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말씀해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그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날 때 혹시라도 착각하여 자기들이 섬기는 우상이 그렇게 행한 것이라고 말할까봐 이들에게 분명히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해주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5절의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예로부터 네게 알게 하였고 이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네게 듣게 하였느니라. 그것을 네가 듣게 하여 내가 이것을 내 신이 행한 바요, 내가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명령한 바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하고 패역했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이들을 구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놀라운 일이라고 예고합니다. 6절은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43:19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 일이 행해질 것인데, 이것은 은비(隱秘)한, 즉 감추어진 비밀과 같은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은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창조된 것이라는 말씀은 갑자기 생겨난 일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처음 겪는 일이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교만하게 ‘아,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실 거야. 내가 그걸 알고 있지’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구원은 위대하고 놀라우신 섭리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완고하고 패역한 이스라엘(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것은 불순물을 제거하려는 하나님의 연단입니다. 그래서 10절은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은이나 금이 순은과 순금이 되려면 뜨거운 풀무 불 속에 들어가 녹아지고, 그 안의 불순물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욥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고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온갖 죄에 찌들고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순금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앗수르, 바벨론 등에 의해 연단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9절과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9절에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고, 11절에서는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지만, 태생(胎生) 자체가 패역하고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로 선택하셨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을 연단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손상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역사(役事)하시겠다는 말씀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뭔가 잘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해서 구원받은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원받은 은혜는 잘 누리면서도 마치 은혜로 받은 구원이 자기가 잘나서 받은 것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 대해 자부하고 다니면서도 여전히 목이 곧은 백성처럼, 철면피를 하고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욕을 먹고, 그리스도인들이 손가락질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순전히 은혜로 구원받은 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늘 겸손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늘 주님과 깊이 동행해야 합니다. 가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생활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이 담긴 신앙생활로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신앙과 삶이 일치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이 되도록 오늘도 몸부림쳐야 하겠습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