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이사야 45:8~17/ 나야 나, 좀 믿고 따라와 줄래?
“나? 바로 내가 OOO이야!” 누군가가 자신을 뻐기고 싶을 때 하는 말입니다. 자신감을 보이고 싶을 때, 혹은 뭔가 대단한 성과를 올린 후에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제 묵상했던 45장 5절부터 7절까지 하나님께서 바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라!”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해서 부언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바로 내가 OOO야”라고 말하더라도 실수할 수도 있고,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신 창조주이십니다. 8절은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망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아마 지식적으로는 잘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전지전능하시며, 공의로우신 분이시고, 거룩하신 분이시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시며,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시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면서 그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자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는 하나님이 제한적인 존재로 생각하며 행동하고 살아갈 때가 많지 않나요?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제한적인 존재로 굴레 씌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때로는 마치 자기를 만든 토기장이에게 항의하는 토기 한 조각처럼 행동합니다. 9절이 그러한 모습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9절) 이 말씀은 토기 한 조각이 자기를 만든 토기장이에게 “도대체 당신은 이걸 토기라고 만든 거요? 아니, 손이 없는 자가 만든 것처럼 형편없이 만들었네”라고 항변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는 마치 10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의 부모에게 “어찌해서 날 이렇게 낳았소? 이런 나를 낳느라 그렇게 해산의 고통을 당한 거요?”라고 묻는 못난 자식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보기에도 자기들의 모습이 비참했을 수도 있습니다. 늘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자신들을 보고 민망하여 고개를 들 수 없는데, 그러면서 오히려 하나님께, “그러게 우리를 좀 죄를 짓지 않고 잘 살아가는 자로 만드셨으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라고 항변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때로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인간을 만들 때 아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만들지 말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존재로 만들었으면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지도 않고, 죄로 인한 고통도 겪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 왜 인간에게 그 자유의지인지 뭔지를 준 거요?”라고 말하는데, 같은 맥락에 대한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피조물이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항변할 권리가 사실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통해서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 측면으로 설명을 해주시고 있지만, 그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主權)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당하는 상황들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물론 우리의 의지가 행하는 것들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결과들이 있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섭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놓여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11절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 말씀에서 나오는 내 아들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계획을 갖고 있으시고, 그 계획을 역사 속에서 행하시고 있습니다. 그 사실에 대해서 12절부터 17절까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범죄하여 포로로 끌려가지만 결국 그들은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임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3절). 그리고 결국 이방 민족들과 애굽도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인정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13절, 14절).
어쩌면 고통을 당하는 상황 속에 있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은 어딘가 숨어 있어서 우리를 돌보지 않으신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15절도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하는 자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숨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으실 뿐입니다. 내일 묵상할 본문에 나오는 말씀이지만 “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고 말씀하신 19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숨어서 말씀하시지도 않았고 혼란스럽게 말씀하시지도 않으셨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선지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분명하게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이 듣지 않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숨어 있으신 것처럼 느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일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계획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미 전해졌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아주 명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묵상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는 믿음의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자는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들은 영원히 부끄러움과 욕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15절, 17절). 지금 우리에 하나님은 “내가 바로 하나님이야. 그러니 나만 믿고 따라와”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왜 이러냐고 자꾸 따지지만 말고, 네 생각대로 안 되고 있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나를 따라와”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들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셔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끌어 가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은 어느덧 이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