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이사야 40:1~11/ 내 백성을 위로하라!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7-12 17:22
조회
385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는 자에게 위로가 될만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회복에 대한 명확한 약속일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고난과 고통은 그야말로 참담합니다. 그런데 희망이 있다면, 더구나 확실한 근거에 의한 희망이라면 지금의 고통은 견딜만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고난과 역경이 지속되고 있다 하더라도 위로가 될 것입니다.


오늘의 첫절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1절)는 메시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입니다. 애굽과 앗수르, 그리고 앗수르에 이어진 바벨론 등의 주변 강국에 의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주변 강국들에 의해 멸망 당할 것에 대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40장으로 넘어오면서 하나님은 이러한 위기 속에 절망하고 있는 유다 백성을 향해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이사야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는 때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될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이전의 예언을 통해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포로가 될 것이라는 예언도 하였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하십니다. 어쩌면 “도대체 어떻게 위로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할 수 있는 명령입니다. “지금 모든 상황이 최악입니다. 이제 우리의 범죄로 말미암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할 것이 분명하고, 이젠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데, 어떻게 위로해야 합니까?”라고 물고 싶은 상황입니다.

암담한 것 같은 상황에서 전해지는 위로, 그것은 바로 “회복”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범죄를 추상(秋霜)과 같이 심판하실 것이지만, 그 심판으로 모든 것을 끝내지 않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시고 있습니다. 응당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은 희망입니다. 마땅히 받을 형벌 이후에는 다시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은 축복입니다.

2절은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마음에 진심으로 여겨지도록 말하라고 하시면서 죄로 말미암은 노역(勞役)이 끝이 나고 그 모든 죄악이 용서 받았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절 이후에는 회복의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며(3절), 골짜기가 돋우어지며 언덕마다 낮아져서 험한 모든 곳이 평지처럼 평탄하게 될 것(4절)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볼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5절). 이스라엘이 범죄하였을 때엔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사무엘상 4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범죄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범한 죄들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대패(大敗)하고 하나님의 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을 때 엘리의 두 아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엘리 제사장도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는 참담함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기를 낳게 되는데, 그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אִֽי־כָבֹוד֙)이라고 짓습니다(삼상 4:21). 그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도 없고, 하나님의 역사(役事)도 없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면서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구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약속이야말로 진정한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이스라엘에 임재하시고,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임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삶이야말로 정말 참혹한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시니 이 말씀이야말로 위로 중에서 가장 큰 위로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와 돌보심이 다시 이스라엘 가운데 회복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10절, 11절). 전능자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돌보심이 회복되면 다시 질서가 회복될 것이고, 참된 평강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전능자 하나님 안에서 제 자리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들의 꽃과 같을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6절~8절). 이 위로의 말씀, 희망의 메시지는 잠깐 기분 좋게 해주었다가 끝나버리는 허황된 말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질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고 하신 민수기 23:19 말씀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은 식언(食言)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이루어지지 않을 말들은 오히려 나중에 좌절감과 절망감을 더 심하게 할 뿐입니다. 흔히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공약(公約)을 내거는데, 사람들이 이 공약(公約, pledge)을 공약(空約, irresponsible promise)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는 하지도 않을, 하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신뢰성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약(空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메시지는 더욱 믿을만하고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희망의 메시지, 이 위로의 메시지에 우리의 귀를 기울여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메시지를 이사야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높은 산에 올라 힘써 소리를 높여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9절). 확실한 약속을 전하는 것이라면 전하는 자 역시 당당하게 그 소식을 소리 높여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희망의 메시지, 위로의 메시지가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회복시켜주실 것을, 참된 평강을 누리게 해주실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우리는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위로의 메시지, 희망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망각하면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우리조차 의기소침(意氣銷沈)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기쁜 소식을 이 시대에 전해야 할 자들입니다. 앞으로 살펴볼 이사야서를 통해서도 계속 살피게 되겠지만, 이 소식을 이 시대에 전하는 자로 굳게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이 되시고, 위로가 되십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