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략과 술수는 이기적인 욕심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참 지혜가 아니라고 어제의 본문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지혜는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결국 다툼과 갈등과 분열이라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서도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에서 시기도 나오고, 다툼도 나오고, 갈등도 나오고, 분열도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욕심만으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욕심의 특성 중 하나는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추구하고 손에 쥐려고 하지만 욕심이라는 녀석은 손에 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그 이상의 것을 또 바라봅니다. 그래서 욕심으로 내가 취할 것은 없습니다. 2절은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어느 정도에서 만족할 줄 아는 자들은(자족하는 자들은) 화평을 누릴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는 욕심에 사로잡힌 자들은 끊임없이 다투고 시기하며 자기의 손에 더 많은 것을 쥐려고 아등바등하다가 스스로 자멸(自滅)하는 자가 됩니다.
욕심으로 가득 찬 자는 제대로 된 기도도 할 수 없는 자입니다. 성경에서는 응답받지 못하는 몇 가지 이유를 거론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2절과 3절의 말씀입니다. “2…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과 함께 기도한다 하더라도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가 아니기에 응답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늘 하나님께 이것저것을 달라고 기도할 때가 많은데 자신의 기도를 살펴보면 의외로 불필요한 간구, 지나친 욕심 때문에 구하는 기도가 많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런 기도가 내 기도의 분량에 점차 많아지기 시작하면 이런 기도를 하는 이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겠다는 마태복음 6:33의 말씀을 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지혜와 벗된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기에 세상과 벗될 수가 없습니다(4절).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뒤로 하고 세상과 벗되어 살아가면 그런 이들을 향해 “간음하는 여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4절).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8절).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자들로 이 땅에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세상과 어울리면 성령님께서 시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절).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길,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서만 살아가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세상의 이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4절).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적당히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가까이하며 살아가길 촉구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8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게 하는 비결은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8절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6절). 세상이 우리에게 만족을 줄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자꾸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세상에서 주는 즐거움이나 기쁨을 오히려 애통과 근심으로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9절). 예를 들면 세상에서 승승장구(乘勝長驅)하여 높은 지위를 얻고, 물질적으로 풍요하게 되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세상에서 주는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될 때 그것에 만족해하며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세상에서 성공한다면 그것은 슬퍼하고 애통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성공에 취해있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만족을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며 살아야 합니다(7절).
이렇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십니다(10절).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내 생각과 욕심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세워주시고, 높여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비방하는 삶을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11절).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과도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내가 율법 위에 서 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율법 앞에 부족한 자임을 깨닫지 못하였기에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교만한 태도입니다. 나 자신이 그럴만한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12절에서도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도 율법 앞에 판단을 받을 자임에도 마치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선 것처럼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자기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엄중(嚴重)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아는 자들은 다른 사람을 쉽게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않습니다. 비방과 판단으로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면 내가 높아지는데, 이것도 욕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나는 재판관이 아니라 율법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율법의 준행자이지 판단자가 아닙니다. 서로 비방하고 판단하면 그 공동체가 오히려 혼탁해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가까이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지혜)에 따라 살아가는 것에 우선적으로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세상과 벗되어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방과 판단에 열을 올리지 말고, 나 자신부터 하나님 앞에 겸허한 태도로 오직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