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마태복음 18:21~35/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3-03-09 08:57
조회
26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하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전의 말씀과의 맥락을 볼 때 용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 이전의 말씀들도 용서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주님의 말씀을 듣다가 문득 베드로가 질문을 합니다. 누군가 내게 죄를 범했을 때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느냐고 묻습니다(21절). 베드로가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냐고 물은 것은 베드로로서는 매우 크고 관대한 아량을 베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일곱 번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이기에 충분히 용서했다고 여겨질 숫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질문에 주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답하십니다(22절).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한다는 말은 단순히 숫자상으로 490번을 용서하라는 말씀이라기보다는 완전 숫자로 인식되는 일곱 번과 그의 열 배인 일흔 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제한 없이 용서하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 용서는 일방적이지는 않습니다. 이미 오늘 본문 이전에 기록된 15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을 볼 때 죄를 지은 자가 그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을 때, 이에 대해 용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어서 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용서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시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는 만 달란트 빚진 자가 등장합니다. 만 달란트를 빚졌다는 말은 천문학적인 금액의 빚을 진 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도저히 갚기 힘든 빚을 말합니다.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이 성인 남자의 하루 품삯이었다고 하니 만 달란트는 하루 품삯을 10만 원으로 치면 약 6조 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하루 품삯을 대폭 줄여서 5만 원으로 계산해도 3조 원입니다. 25절 말씀처럼 자신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아마 갚기 힘든 금액입니다. 26절에 빚진 자가 다 갚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러한 약속은 지켜지기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은 이 빚진 자가 이 빚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불쌍히 여겨 이 어마어마한 빚을 탕감해줍니다(26절).

그런데 문제는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자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빚을 갚지 못했다고 옥에 가두는 일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백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 10만 원으로 계산하면 일천만 원, 5만 원으로 계산하면 500만 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은 서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나는 금액입니다. 그런데 만 달란트 빚진 자가 그 빚을 탕감받았는데,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닦달하여 옥에 가두기까지 합니다. 백 데나리온은 갚을 수 있는 정도의 금액에 해당함에도 기다려주지 않고 매우 가혹하게 다룬 것입니다. 결국 이 사람은 만 달란트를 탕감해주었던 주인에게 불려 가서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용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은혜였음을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나의 죄 됨을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은혜를 입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에게 죄를 지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행위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35절)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으로부터”라는 말씀은 마음 중심으로 용서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용서를 의미합니다. 꿍하니 마음에 품고 있지 말고, 용서할 뿐만 아니라 아예 그 지은 죄에 대해서 잊어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때, 먼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먼저 용서하는 태도를 갖추라는 말씀입니다.

요즘은 누군가 잘못하면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기에 급급한 시대입니다. 정의(正義)와 공의(公義)는 강력하게 외치면서, 사랑과 용서는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이미 15절부터 17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죄악된 자들에 대해서는 결국 도려내야 하는 때가 오겠지만, 우선은 돌이켜 회복되도록 돕는 태도를 가지고 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 은혜와 긍휼의 태도, 사랑과 용서의 태도로 대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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