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벗 뜨락
내게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렸다. 그리고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었다.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건너 가나안 땅으로 향할 때, 그 주변 민족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목격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였다. 민족마다 자기의 신들을 두고 섬겼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役事)를 행하시는 분이셨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가 묵상하는 성경본문은 다니엘서인데, 다니엘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강대국에 의해 멸망당하여 포로 신세로 타국에서 지내고 있는 다니엘이었지만, 다니엘은 정복국의 왕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자였다. 왜냐하면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다니엘의 삶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니엘은 많은 시기와 질투로 인해 모함을 겪고, 위기에 처하면서도 오히려 더욱 당당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의미이며,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드러내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役事)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추상적이지도 않고, 관념적(觀念的)이지도 않다. 우리의 믿음은 종교적이지도 않다. 종교적이란 종교적 관습과 전통, 그리고 의식(儀式)만 남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야 한다.
요즘 그리스도인은 말만 많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다면,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면, 그 모습이 보여져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간증이 끊임없이 고백되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러한 그리스도인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은 것처럼 여겨진다.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우리의 삶 속에서 엄청난 기적적인 일을 경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어려움도 겪고, 슬픔도 경험하고, 좌절과 낙망의 터널을 지나갈 때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가면서도 언젠가 하나님의 때에 결국은 하나님께서 모든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높이실 것이라는 믿음의 태도를 보여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하고 있음을 믿는다면 그러한 믿음의 태도가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닐까? 오늘도 내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누리고 싶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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