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벗 뜨락
나는 진짜 기도하고 있는가?
아마 기독교인들이라면 짧든 길든, 자주 하든 드물게 하든 기도라는 걸 할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기도는 인간이 종종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 기도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더라도 기도를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되는 미지(未知)의 존재에게 기도라는 걸 할 때가 있다. 특히 큰 위기에 맞닥뜨리면 자기도 모르게 기도하게 된다. 때로는 위기의 순간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행복과 안녕(安寧)을 기원하기 위해서 기도하거나 기원한다는 표현으로 막연하나마 기도라는 형태를 사용하기도 한다.
일단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이 하는 기도에 대해서는 차치(且置)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에 대해서 잠깐 들여다보자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기도조차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이 하는 기도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일 때가 많다. 매우 막연하거나, 추상적일 때가 많고, 때로는 매우 종교적일 때도 많다. 아니,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기도에 대해서는 그렇다 쳐도 종교적인 게 무슨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여기서 종교적이라는 표현은 종교적 관습과 형식에 젖어서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종교적이란 표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형태를 벗어나 보편적인 종교의 형태를 답습하여 그 본질을 잃어버린 모습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피조물인 인간이고,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인간의 몸을 입고 살아가는 존재이고,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이시기에 인간과 인간이 나누는 대화와는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창조주 하나님과 매우 친밀한 관계로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소위 인격적인 교제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다른 종교의 기도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형식적이지 않다. 종교적 틀 안에 갇히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일방적이지 않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다(살전 5:17). 만약 종교적인 형태의 기도라고 한다면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마치 좋은 친구와 친밀하게 교제하듯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도할 수 있다.
물론 기도엔 다른 지체들과 합심하여 함께 기도할 때도 있어서 간절하게 울부짖으며 기도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따로 떼어서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께 이러저러한 말씀을 조곤조곤 나누면서 기도할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기도라는 형식을 갖추는 것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추상화하지 말고, 종교화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이게 진짜 기도다. 나는 지금 이런 기도를 하고 있는가?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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