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벗 뜨락
죽도록 헌신하기에 앞서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에 대해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 13:37)라고 강력하게 말합니다. 목숨까지 버리며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의에 찬 고백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 고백 앞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하시며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베드로는 사랑하라는 그 말씀보다는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염려하며 자신의 충성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고백은 엄청난 결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고백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당부하시는 말씀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는 지금은 제자들이 이 길을 함께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듯이 서로 낮은 자세로 섬기고,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베드로가 충성 맹세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닭 울기 전에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주님은 목숨을 건 결의보다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바칠 정도로 헌신하는 것은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도그마(dogma, 독선적 신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그마에 기인(起因)한 이데올로기(ideology, 이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이데올로기는 파괴적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것은 도그마도,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헌신의 결단은 순식간에 무기력해집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이런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을 보면 이 부분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목숨까지 버리겠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죽도록 헌신하기에 앞서 먼저 서로 사랑하는 태도가 더 중요함을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을 향해 충성을 다하겠다며 헌신하지만, 열정만 있지 사랑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이 없는 열정, 사랑이 없는 헌신은 때로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오히려 복음 전파를 가로막습니다. 성경책을 옆에 끼고 교회에 꾸준히 가면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주님이 욕을 먹습니다. 가족이나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헌신으로 주님께 충성하면 오히려 그 헌신이 주님의 사랑을 가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정의도 중요하고, 진리도 중요하지만 사랑의 태도를 잃은 정의와 진리는 하나님과 동떨어진 자만일 뿐입니다. 주님은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시며 진리이신 분이지만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린 더 사랑해야 합니다.
(글/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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