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벗 뜨락

행위에 애쓰지 말고, 관계에 애쓰라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1-09-11 21:16
조회
111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은혜 아래 살아가는 자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매이지 않고 복음 안에서 자유하게 살아간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에 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자유가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방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율법에 매이지는 않지만, 오히려 더 거룩한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서 딜레마(Dilemma)가 생겨난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해놓고 그렇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자유를 누리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복음 안에서 자유하다며 자기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가면서 육신을 따라 살아가기도 한다. 심지어 교회공동체 안에서 질서를 깨뜨리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자유를 누리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그리스도인은 은혜 안에 살고 있지만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여러 가지 규칙을 정해놓고 그것에 매여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 때문에 지쳐서 오히려 신앙의 침체기를 경험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 다른 것은 필요가 없다. 그러니 어떤 행위로 의롭게 여김을 받겠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그건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그러면 아무것도 애쓰지 않고 살아갈 때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건 또 그렇지 않다. 모두가 경험해보았겠지만 노력하지 않고는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의 연약한 육신은 죄의 유혹에 늘 속절없이 넘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행위에 애쓰지 말고, 관계에 애쓰라고 말한다. 내가 거룩해지려고, 내가 의롭게 살아보려고 내 마음을 다지고, 내 행위에 노력해보아도 참담한 결과에 좌절감만 생긴다. 그런데 내 안에 계신 주님과, 성령님과의 관계에 깊이 들어가면 내 삶이 거룩해져 간다. 주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내가 의식적으로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저절로 의로움과 거룩함이 삶에서 드러나게 된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나도 모르게 닮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배우자를 위해 뭔가 해주려고 애쓰는 건 쉽지 않다. 그렇게 애써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런데 배우자를 깊이 사랑하면 할수록 저절로 배우자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내 안에 계시는 주님과, 성령님께 더 집중하고 깊이 교제하면 내게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고, 내 삶에서 거룩함이 더 풍성해진다. 이젠 행위에 애쓰기보다는 주님과의 깊은 관계에 애쓰는 모두가 되길 바란다.

(글/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