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벗 뜨락

비록 느려도, 가고 있음에 대하여

작성자
phil120
작성일
2023-10-14 17:29
조회
46

가을빛이 확연해졌다. 일교차도 커졌고, 찔 듯이 더웠던 폭염은 어느덧 사라지고, 선선한 공기가 꽤 상쾌하다. 에어컨의 동작이 멈췄을 뿐 아니라, 이젠 창문을 여는 시간마저 줄어들고 있다. 우리집 거실에서 바라보면 멀리 논밭이 보이고, 계양산이 훤하게 보인다. 전망이 꽤 좋은 편이다. 그런데 논의 색깔이 꽤 달라졌다. 초록색이었던 벼들이 이젠 노랗게 바뀌었다. 조만간에 추수가 이뤄지면 벌판이 드러나겠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가을빛을 입은 자연이 보이는데, 매일 창밖을 바라보며 늘 비슷한 것처럼 보였었는데, 문득 창밖에 보이는 계절의 색깔조차 많이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어제와 오늘이 같아 보여도, 시간이 흐른 후에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면 많이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는 목사들에게는 교회 성장이 꽤 더디다고 느낄 수 있다. 거의 변화가 없는 듯하여 때론 조바심이 생길 때도 있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새식구가 찾아오면 좋겠다는 간절함을 갖기도 하고, 이래서 언제 교회가 성장하겠느냐는 회의감(懷疑感)마저 들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개척 교회의 목사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기도 한다. 아주 소수이기는 하지만, 교회를 개척하자마자 수십 명의 성도가 모이고, 짧은 시간에 몇백 명의 성도가 모이는 중형교회로 성장하는 교회들을 바라보며 마치 자기가 패배자인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아마 개척 교회를 목회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마음이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매주일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도 일 년 전, 이 년 전을 되돌아보면 아직도 적긴 하지만 성도의 숫자도 늘었고, 예전보다 더 단단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속도는 매우 느려 보여도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내게 “교회를 개척했는데, 좀 어떤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종종 이렇게 대답한다.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거북이가 걸어가는 것은 매우 느리다. 느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마치 동상(銅像)처럼 미동(微動)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도 있다. 움직이길 기다리면서 바라보아도 전혀 움직임이 없을 때도 많다. 그런데 잠깐 다른 데 눈을 돌리고 있다가 다시 쳐다보면 움직임이 달라져 있고, 다시 조금씩 느림보처럼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찾아가 보면 그 거북이는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거나 완전히 다른 곳에서 움직이고 있다. 비록 느려 보이지만, 가고 있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개척 교회의 목회자에게나, 개척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비록 느리지만, 우리가 앞으로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늘 같은 것처럼 보여서 때론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의 신앙도 자라가고 있고, 우리 교회도 조금씩이나마 자라가면서 단단해져 가고 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면 언젠가 부쩍 성장한 우리의 모습을 문득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안창국 목사)

#느려도가고있다

#거북이걸음이라도움직이고있다

#개척교회목사들의조바심

#그리스도의생명이있다면성장하고있다

#중요한것은우리의걸음을멈추지않는것

#라이트하우스고양

#라이트하우스무브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