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벗 뜨락
하나님의 심판과 긍휼
하나님의 속성(屬性)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매우 여러 가지의 속성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중에는 사랑과 공의(公義)가 있다. 이 두 가지 속성은 상호보완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떤 측면에서 보면 두 속성이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의(義)를 가지신 분이시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죄를 용납하실 수 없으신 분이시다. 죄를 용납하는 순간 절대의(絶對義)가 훼손되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그대로 받아들이실 수가 없으시다. 그러니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을 받아들이실 수 없으신 분이시다. 죄를 지은 인간을 향해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징계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이러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죄를 지어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인간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래서 인간이 영원한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지니시고 있다. 그런데 사랑을 행하려니 죄를 지은 인간을 그대로 용서하기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허락하지 않고, 그대로 멸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자니 하나님의 사랑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죄인 된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속성으로 인하여 딜레마(Dilemma)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해법(解法)을 찾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로 인한 심판과 하나님의 사랑이 만나는 곳이다.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심판을 당한 바 되었고, 우리를 사랑하여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 없다 하심을 얻어(이신칭의, 以信稱義)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해주셨다.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만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자주 목격된다. 구약의 선지서를 읽을 때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여지없이 목격된다. 이제 우리가 묵상하기 시작한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며 죄악을 저지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언(代言)하는 예레미야는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슬프다.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라고도 부른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만을 선언하지 않으신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서 회복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의 죄악을 그냥 보아넘기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의 사랑이 다가왔다.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예레미야 묵상이 되길 바란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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